'가을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없어...' 애국가의 삼절 가사처럼 구름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이다. 물감과 물을 적당히 섞어 만들어 놓은 하늘은 스폰지 하나에 쏘옥 스며들어 사라져 버릴 것처럼 물기 베어 있는 듯 청명하고 아름답다. 시몬이 되어 낙엽밟으며 걸어본다. 시인 '구르몽'이 읊어주는 시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인냥 내가 시몬인 것이다. 또한 심오한 상념의 세계에 빠져 미로 속을 헤매이는 '로뎅'의 모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음미하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친다. 여늬 때보다 더 깊이 자신을 위한 무한한 날개짓에 이 계절은 병명없는 병들을 안겨주며 제 살 깎아먹기에 여념이 없다. 아름다운 시어로 가을을 만들고 마약처럼 빨려 들어가 혹독한 가을앓이 겪어내는 우리 모두가 물오른 시인이요 철학가인 것이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 .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김재진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분 - 지면 위의 활자들이 스산한 가을날 살아 숨쉬고 있다. 잔잔한 가슴에 파문을 이는 것은 이 詩때문만도 아니요, 계절탓도 아니였다. 싯귀처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면서 노력하며 살지만 가끔은 인생의 간이역에 내려 쉬어가고픈 마음 간절한 가을 깊어가는 날이다. "어딜 혼자..." "여자가 혼자서..." 따위 염려를 가장한 질타는 마음좋은 남편을 밴댕이 소갈딱지와 비교하는 동급의 소심한 아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중년남자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사랑한다는 말을 쉬이 뱉으며 자유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척 하지만 결국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큰 죄라도 지은 냥 닥달하는 속좁은 남정네의 야수같은 모습이 가끔은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결국 누구나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동행하며 나란히 함께할 수 있는 반려자이긴 하지만 질곡이라는 끈으로 혼자이고픈 나를 옭아맬때 나의 계절병 또한 가을만큼 깊어간다. 근 보름동안 몇백미터 되지 않는 얕으막한 산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왔다. 미명의 어둠속 공동묘지라는 푯말이 산초입에 세워져 있으니 갈팡질팡 다리도 마음도 도리질하던 그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새기면서 미루적거리던 부단함 놓아버렸다. 성격상 항상 그 '시작'이 문제인 나는 어려운 숙제를 푼 것처럼 장점인 끈기와 지구력을 든든한 빽으로 삼고 그칠줄 모르는 새벽산행을 과감히 도전하였다. 소도시민의 산책로로 딱 알맞은 산행이 30분으로 끝나지만 그 30분 속에 한걸음 한걸음 걷는 마른솔잎 길과 몸 밖으로 발산되는 수분이 그 어떤 보약보다 귀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소리나지 않는 매우 작은 종을 몸에 달고 연보랏빛 잔대는 새벽이슬 머금고 우리의 발등을 쓰다듬는다. 으아리꽃이 겨울눈처럼 하얗게 풀과 나무에 기대어 소복히 쌓여 있는 겨울눈의 모습을 갖추고 주변을 향내음으로 장악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싸리꽃의 실체와 희고 노란 마타리 등이 굳이 먼산 찾지 않아도 볼수 있는 아름다운 야생화의 이름으로 드문드문 피어 있어 시선 끌어모으는 기쁨조의 하나로 버티고 있으니 그 고마움을 내가 가까이 꽃에게로 다가가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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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대 으 아 리 싸 리 꽃 마 타 리 양팔 벌려 보득솔 손가락으로 스치우면서 돌탑 쌓아놓은 곳까지 쉬임없이 오르면 이마의 흐르는 땀은 볼따라 목줄기를 타고 옷으로 내안으로 스며든다. 솔가지에 걸쳐 서서히 떠오르는 일출이 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깊은 가을산으로 오라는 손짓인것 같아 계절병을 핑계로 혼자만의 산행 의사를 남편에게 넌즈시 건네였던 것이다. 보기좋게 퇴짜 맞으리라는 것을 알긴 했지만 밴댕이처럼 속좁은 말투를 끌어 모아 내게 던지니 당연히 나도 동급 여인네로 돌변할 수 밖에...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야속한 것은 한번 귀기울여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묵살해 버리는 태도때문이였으리라.. 아... 김재진님의 싯귀가 입안에서 맴맴돌면서 나를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홀로이 온 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고 싶다. 나선형 그리며 처연하게 떨어질 나뭇잎새와 바삭거리는 낙엽밟는 소리를 적막한 산길에서 듣고 싶기에...... 이것도 병이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