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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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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비 내리던 날의 그 여자


BY Ria 2004-09-16

가을비가 잦으면 시어미 잔소리만 는다고 했는데 슬픈 며느리 눈물 같은
가을비를 보니 그 저께 빗속에서 만난 이름모를 그 여인이 자꾸만 떠올라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난 휴일 시댁의 여러 가족들이 벌초를 하기위해 고향 작은 아버님 댁에 모였다.
아침부터 흐려있던 날씨는 한나절을 참지 못하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처량하게 내린다.
비 오는 날에 전어회는 제 맛이 아닌데 그래도 남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면 한잔하며
안주로 전어회를 찾을 것 같아 전어회를 사려 시장엘 가는 중이었다.

비는 옅은 물안개를 피워 올리며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 속에 흔적을 감추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가고 있는데 어느 마을 앞에서 우산도 쓰지 않은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 칠 텐 데 비를 맞고 차를 세우는 그 여인을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차를 세우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읍내 사거리 지나 학교 앞 까지만 태워 달란다.
하도 세상이 요지경이라 불쑥 아무나 차를 태우기가 망 서려 졌지만 같은 방향이기도 했고
그 여인의 눈빛이 도저히 태워 주지 않고는 십리도 못가 발병 날것만 같은 안쓰러운 눈빛
때문에 차 문을 열어주었다.
삼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가 뒷 좌석에 덜썩 주저 않자 그 여자의 긴 한숨도  내 차안에
동승을 한듯 했다.
실내거울에 비친 그 여자의 행색은 아무리 비를 맞았다 해도 그리 깔끔한 모양은 아닌 듯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는 혼자 술술 푸념하듯 말을 내밷는다.

 

내가 오늘 너무 너무 마음이 아퍼거든요/
그래서 제가 술을 한잔 했거든요/
우리친정이 조기 윗 동네 인데요/
친정 갔다가 너무 속이 상해서 미칠 것만 같아서 /

그리고는 그 여자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설움에 겨운 한탄 섞인 울음을 울먹이며
왜 이리 사는 게 힘든 거야 하며 혼자 중얼거리더니
그녀도 내가 백 밀러로 내가 보고 있다는 걸 눈치를 쳇 는지
어머 제가 주책없이 미안해요/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의 온갖 힘겨움과 고단함이 잔뜩 붙어있는 듯 했다.

 

힘든 일이 있나 봐요/
했더니
예/
우리남편 택시운전하다 사고 처서 실직하고/
뭘 좀 해 보려고 하면 사기당하고 돈 다 잃고 /
이것저것  해보려고 아무리 발버둥 처도/
신용불량자 되어 희망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 아들 라면이 먹고 싶데요/
저요 라면 살 돈도 없어 우리 아들 라면도 못 먹여요/
눈을 뜨고 걷는데 눈앞이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난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을까요?/

그녀는 아무라도 붙들고 자신의 신세한탄을 다 풀어놓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뜸

저/ 있잖아요/
라면 두개만 사게 천 이백 원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천 이백 원이라.......
그녀는 아들에게 라면을 먹이기 위해 내게 천이백원만 달란다.
더 많이 요구를 해도 밑져야 본전인데 주고 안주고야 내 마음인데
그녀의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어쩌면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라면 두개 값인지 모르겠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아줌마 아직 젊잖아요/
그럴까요?/  너무 막막해서 제 앞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내게 언제 좋은날이 오기는 올 까요/

그러면서 그 여자는 몇 번을 미안 합니다 를 반복하며 고개를 떨군다.


자기가 내리고자 한 장소에 도착했기에 차를 세웠다.
아들에게 라면을 사 주라고 나는 만원 한 장을 쥐어 주며
그녀를 내려주었다
그녀가 내리고 간 그 시골길에는 더욱 세찬 가을비가 어렵고 힘겨운 세상을
더 아프게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들판은 한결 더 황금색으로 풍성해 지겠지
그녀에게도 이 풍성한 가을 들판 같은 날이 오겠지
아들에게 먹일 라면 값 걱정하지 않고
비 오는 날 한없이 빗속을 헤매지 않아도 될 그런 날이 꼭 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