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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68

해후.


BY 모모짱 2004-09-16

 

늦었다.

강의 시간이 임박해서 신촌로타리에서 버스를 내렸다.

육교를 뛰어오르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까졌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아팠다.

발목도 시큰거린다.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과의 남학생...

'다쳤잖아요...뛰지마세요...'

그 남학생은 여학생한테 반말을 하는 적이 없다.

여학생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학생이다.

나는 쩔뚝거리며 대답했다.

'아이참... 큰일났네....'

'지금 가도 지각이니까 포기합시다. 약이나 사서 바릅시다.'

나는 그 남학생이 이끄는대로 근처에 있는 커피숖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는 약국에 가서 약을 사왔다.

'조심해야지요. 아프겠네...'

약을 발라주었다.

 

그후 휴강이었던 날...

과 친구들과 능으로 놀러갔다.

말타기도 하고 신나게 놀았다.

숨바꼭질을 했다.

이긴 팀이 진 팀을 엎어놓고 말타기를 했다.

남자아이들을 엎어 놓고 뛰어가서 등에 올라 타며 깔깔대고 웃었다.

놀다 보니 배가 고팠다.

라면집에 갔다.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께스에 라면을 담아 오는 것을 본 내가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진짜로 아팠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하더니 토하고 말았다.

무릎에 약을 발라주던 남학생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없다.

한참후에 돌아온 그의 손에는 활명수가 들려져 있었다.

내게 활명수를 내 밀던 그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디까지 갔다온거야?'

다른 남학생들이 놀란다.

 

우리집이 이사를 하는 날이다.

남학생들이 찾아와 도와 주었다.

그 남학생은 전기 일을 맡았다.

'남자 형제가 없어서 불편하시겠어요.'

언니에게 하는 말이다.

언니는 그 남학생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얘...그애는 생긴 것도 멋있더라.'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정말로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결혼후 이년쯤 후였던것 같다.

울적한 일이 있어서 혼자 명동을 나갔다.

오랫만에 보는 명동...

명동은 그대로 있는데 나만 변한것 같아 마음이 더 울적했다.

영화도 한편 보고 미장원에 들려 머리도 잘랐다.

얼마만인가...

명동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른 것이...

시집 식구들 틈바구니에서 내 시간이란 갖을수도 없는

상황이 숨이 막혔었는데 머리를 자르고 나니 기분이 썩 괜찮아 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일상에 임해야지...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옛날의 그 남학생을 만났다.

반가웠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반가운 내색을 들어 냈지만...

처녀 시절에 잠시나마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던 기억을 감추고 나는 점잖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품위있게...

오늘은 머리도 명동에서 자르고 옷도 신경쓰고 입었으니까

별로 초라해 보이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게 왠 보나스냐 싶었다.

'졸업후 처음 보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게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 할까요?'

했다.

그와 커피숖을 들어가면서 두번째 그와 커피숖에 들어

간다는 생각을 해냈다.

커피를 놓고 마주 앉은 그 남학생의 첫번째 말...

'만년 소녀일줄 알았더니 별수없이 아줌마가 되어 있네요.'

이건 보나스가 아니라 찬물을 끼얹는 말이다.

 

수줍음 많던 옛날의 그 남학생의 표정이 아닌것 같았다.

아직도 이십대였던 나는 아줌마라는 말에 반감이 생겼다.

능에서 멀리 뛰어가 활명수를 손에 들고 달려 올때의 발갛게

상기되었던 그 얼굴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실례가 어디있단 말인가.

삼년만에 만나서 겨우 그렇게 말을 하다니...

야 ...너는 뭐 소년인줄 아느냐...

아직 나를 처녀로 보는 사람도 많단 말이다. ...

속으로 말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명동에서 자른 머리가 아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바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나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아이를 봐야겠다.

그는 이런 저런 말을 물어 보았지만 나는 이미 기분이

상한후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먼저 갔다.

미용사가 머리를 아줌마처럼 잘라 주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아닌데...

그새 시력이 나빠진게지...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늦게 결혼을 해서 지금은 미국에 산단다.

열두살 연하와 결혼을 했단다.

젊은 여자와 결혼을 했으니 많이 늙진 않았겠지.

그래도 언젠가 다시 한번 우연히 만날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말해주리라.

 

'할아버지 다 됬네요...'

라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