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중학교시절.
새벽에 집에서 나간다.
엄마는 내가 남들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 새벽에
학교를 가는줄 알고 도시락을 일찍 준비해 주셨다.
학교앞에는 만화가게가 있었다.
나는 만화가게에 단골손님이다.
문을 두드려 주인 아저씨를 깨우고 만화를 한시간 보면
아이들이 교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나도 등교를 한다.
나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만화 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은 내가 들려주는 만화 이야기에 빠져든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깨막이 신문기자도 되고
칠성이도 되는 순간이다.
말하자면 나는 재담꾼이었다.
나는 목소리가 크지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이들은 귀를 기우려야만 했다.
'좀 크게 말해.'
어떤 애가 말한다.
'안들리는 애는 듣지마.'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수업 시작종이 울린다.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다음편에 계속.'
얌전한 아이로 정평이 나 있던 나는 절대로 선생님한테
찍히는 일이 없다.
키들키들 웃은 아이만 지적을 당한다.
그아이는 벌을 서면서도 나를 불지 않는다.
'남영동에 아이스케키 맛 있는 집을 발견했음. 방과후
집합 요망.'
쪽지를 돌렸다.
쪽지를 받은 미련한 아이 하나가 나를 향해서 웃다가
선생님에게 쪽지를 빼앗겼다.
선생님은 내 글씨를 알아 보셨다.
'혹시 네가 원흉...? 설마...누가 시켰어?'
시킨 아이는 없었다.
믿을수 없는 선생님은 그 일은 그냥 넘어가 주었다.
고등학교때 일이다.
나는 명동극장 후문 비상구도 잘 알고 있었다.
또 쪽지를 돌렸다.
친구들 네명이 합세해 주었다.
초원의 빛을 보고 온날 교실은 온통 나타리웃과 워랜비티
이야기로 들떠있었다.
아... 그들의 애절한 사랑 장면은 나를 충분히 사로
잡았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친구들도 나의 영화 이야기에
몰두했다.
'얘 너는 쟤랑 같이 갔었대며..'
한아이가 묻는다.
'그래두 쟤가 얘기해 주는게 더 재미있어.'
선생님이 교실밖에서 듣고 계시줄이야...
나는 드디어 걸렸다.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너처럼 얌전한 아이가 왜 쟤네들한테 묻어 다니니.
앞으론 쟤네들한테 묻어 다니지 말아라.'
아이들이 와 웃는다.
묻어 다니지 말라니...
'내가 껌인가 뭐...'
조그맣게 말하는데 아이들이 듣고 와 웃는다.
체육시간이다.
강당에 모였다.
체육선생님은 별명이 인디안처녀다.
새까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얼굴은 인디안처럼
생겼다.
머리는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머리 감은지가 한달은 되어 보인다.'
Folk Dannce 를 배우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파트너로 나를 지적했다.
미치겠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리게 걸어 나갔다.
나의 걸음걸이를 보고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왜 웃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머리를 고무줄로 묶었다.
말꼬랑지의 머리와 내가 맞잡았다.
선생님이 스텦을 밟고 한바퀴 돌았다.
말꼬랑지가 나의 이마를 쳤다.
나는 한손으로 코를 슬쩍 감싸쥐며 한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때굴때굴 구르며 웃어댔다.
다시 한바퀴...
이번에는 잽싸게 머리를 피하며 나도 돌았다.
선생님이 눈치를 채셨다.
드디어 나는 교무실에 불려갔다.
아이들이 교무실 창밖에서 들여다 본다.
나의 죄가 무엇이던가....
'얘가 내 수업을 망쳤어.'
체육선생님은 나의 담임에게 일렀다.
담임이 말한다.
'얘는 그런 애가 아닌데...'
그렇다. 나는 그런 애가 아니다.
단지 지저분한 선생님의 머리가 문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