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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옛날 이야기..3


BY 후리지아 2004-09-09

며칠 전에 아줌마닷컴에서 메일이 왔다.

사이버 작가에서 결혼이야기로 얘기를 공모한다고..

아~ 여기에 쓸려고 내가 옛날 이야기를 썼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작년에 울 면이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홈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옛날 이야기라고 똑같은 제목으로 올려 놓은 글이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올려 볼란다.

사실 작년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후리지아는 살고 있다.

그 때까지는 면이랑 후리지아랑 단 둘이 알콩 달콩 살았었지만 지금은 밖에서 방금 깨가지고 낑낑대고 있는 이제 갓 백일이 지난 결혼 5년차에 우리에게 와 준 사랑스런 딸내미.. 이쁜 딸내미.. 귀염쟁이 딸내미.. 서진이도 함께이니 말이다.

이 글을 쓸때만 해도 정말 옛날인인 것 같다. 생활이 180도 바뀐 탓에 가끔은 면이랑 신경전을 부리고 더는 언성을 높이면서 서로를 이해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여러 번 생겨난다.

지금은 아예 옆에도 없다.

길고도 긴 교육을 들어갔다. 임신해서는 며칠씩 출장을 다니더니만 이제 갓 백일이 지난 딸내미와 나만을 놔두고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들어가서 흰 눈이 펄펄 내릴 올 해의 마지막날에나 끝난단다. 이 것도 싸울 일인데.. 후후..

난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한다. 더 사랑하는 내가.. 더 사랑하는 내가 참자.. 더 사랑하는 내가 더 사랑해주면서 살자고..

 

얼른 마저 끝내고 우리의 보물에게로 가야지~

 

언제 어느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결혼하자고 딱히 말해본 거 같지 않고 그냥 결혼하는게 너무나 당연히 느꼈던 듯 하다.
난 면이랑 결혼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비누곽'만 들고 오라던 면이..
왜 그말을 했는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면이는 비누곽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결혼은 우리 곁에 늘 함께였다.

그 해는 참 일도 많았다.
첫 서해 교전에 그리고 물연료를 실은 전투기 추락사고에.. 그러니 우리 만남이 따라서 쉽지만은 않았다. 신랑의 직업상..
비행대대에서 근무했던 울 면이 맨날 주말까지 비상대기에 날 홀로 두는 주말이 많아져만 갔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도 만나가면서 다투기도 많이 했고 짜증도 많이 냈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출 퇴근도 한 번 안 시켜주고, 그 흔한 심야 데이트도 한 번 못 해 보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멋진 이벤트도 한 번 안 해주고, 멋진 프로포즈도 못 받았는데.. 늘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던 만남이었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음.. 첨부터 달랐다. 처음 만난 날 청주 시내를 걸어가다가 옷깃만 스쳤는데도 전기가 짝~~ 그때 눈이 왔을때니 외투도 두꺼웠는데..
차도쪽으로는 자기가 가면서 날 자꾸 인도로 몰아 부치면서 닿는 옷 스침..
그게 이렇게까지 깊은 인연으로 다가올 줄이야.. 후후
떨어져 있으니 만나도 헤어질때의 서글픔이 커서 만남의 기쁨도 오롯이 느끼지 못했고
밤새가면서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하루는 전화를 하다가 핸드폰이 너무 뜨거워서 들고 있기도 힘들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베개에 의지해 가면서 몸을 맞추고 그것도 넘 힘들다 했더니 담에 만나는 날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귀엽고 이쁜 이어폰을 사들고 왔다. 쿠쿠
자상하고 마음 따듯한 면이.. 무뚝뚝하고 멋진 말로 날 감동 시켜주는 그런 멋은 없어도,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고 가끔씩 귀엽기까지 한 면이다.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맘에 안든 점도 많았는데 정말 그렇게까지나 좋았을까?
어쩜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던 듯하다.
박사 1년차때 실험실 내 자리는 볕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창가 한쪽 구석이었다.
난 그 자리를 참 좋아했다. 언제 어느때고 나만을 위한 그 자리..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를 맞이하고 있던 봄날 후배가 종이학을 접는 종이를 사왔다.
나도 따라서 한마리를 접는데 마음이 찡한게..
그때부터 접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마리 두마리씩.. 내 꿈과 사랑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맘으로..
좋은 논문 써서 졸업하게 해달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해달라, 등등 (후리지아는 아직 크리스챤이 아니다. ^^..)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도를 그때부터 했던 듯 하다.
그 종이학을 접으면서 이사람일까? 저사람이 내 학을 받을 사람인가? 하면서 약간의 혼돈도 하면서.. 쿠쿠..
아무튼 그 종이학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니 내 결혼상대에게 주리라고 맘 먹으면서 접었다.
3년, 4년 동안을 그렇게 접다가 논문으로 힘이 들고 머리 싸움을 하면서 그 종이학도 스톱이 되었다. 천마리가 되기 전에..
그러다가 면이를 만나면서 그 못다 접은 학을 다시 접게 되었으니..
주인이 면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어쩜 그 바램으로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고 지금껏 그 사랑에 조금의 미심쩍음도 없이 좋아라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이 내 기도를 확실히 들어주셨던 거다. 알게 모르게..
하느님.. 고맙습니다. 꾸~벅~

그러고보니 난 그 흔한 프로포즈를 못 받았네. 쩝..
그땐 좋아서 프로포즈란건 안중에도 없었겠지. 쿠쿠..
난 몰랐다. 내가 프로포즈도 없이 결혼했다는걸..
지금도 비누곽만 들고 오라는 말이 프로포즈였었다고 믿고 있는 순딩이 후리지아다.

결혼하고 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예쁜 프로포즈를 보면 조금은 부럽고 좋아 보이는 것이 나도 그랬었으면 하고 아쉬움이 순간 스치지만..
다시 바꿀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기에 그냥 이기고 살기로 한다.
언젠가는 멋진 이벤트로 날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믿으면서 면이 곁에 꼭 달라 붙어서 살거다. ^^

유치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아직은 결혼의 참 맛을 느끼기에 부족한 결혼 5 년 차의 초보 아줌마 후리지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