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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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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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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접속


BY 땅땅 2004-09-09

landland : 저기요...저는 초보라서 그런데요...

positron : 네...말씀하세요.

landland : 자꾸 접속이 끊기는데요 왜 그런가요?

positron : 모뎀 속도가 얼마나 되죠?

landland : 2400이요...

                    .

                    .

                    .

landland : 고맙습니다.

positron : 네...뭘요...하시다가 물어보실거 있으면 *** - ****로 전화 하세요

landland : 네...고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채팅으로 처음 만났다.

전용선이 보급되기 전이라 모뎀으로 어렵게 통신을 하던 시절이다.

초보였던나는 접속하는 일부터 게시판 둘러보는일이나 대화방에 참여하는 모든

일들이 영 서툴기만 하던 터라 아무나 잡고 이것 저것에 대하여 물어보며 한참

통신에 맛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소심한 20대 초의 나는 괜스리 쓰잘데 없는 남정네들의 유혹이나

농간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유혹으로 부터 벗어 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positron : 그런데 학생이세요?

landland : 아니요...57년생 이구요...직장에 다닙니다.

(믿지 않는 눈치다)

positron : 정말요? 그럼 무슨 띠얘요?

landland : 닭띠요...남동생이 둘 있는데요...한명은  61년 소띠구요...막내는

                 65년 뱀띠여요.

(이모네 언니 오빠들을 모델로 나이와 띠까지 나열하자 조금씩 믿는 눈치다.)

 

positron은 나이 많은 노처녀가 뒤늦게 컴퓨터 공부를 하는것이 기특하다는

생각으로 친절하게 대한다.

 

landland : positron님은 학생이세요?

positron : 네 학생입니다.

landland : 무슨과얘요?

positron : 행정학과요.

landland : 아~ 어느학교요?

positron : 한국방송통신대학이요.

landland : 그럼 혹시 공무원이세요?

positron : 아니요...그냥 학교만 다녀요.

landland : 네...저는 공무원인데 주변에 행정학과 다니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positron은 자신을 방송대 행정학과 학생이라고 소개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것이 간사한것인지 통신에서의  대화에서도 좋은학교나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 그리고 나이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가지는

것이 추세였던 터라 positron과 나는 그 유행에 휩싸이고 싶지 않았던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속이며 가끔씩 통신에서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컴퓨터가 접속이 되지 않는것이었다.

나는 알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러던중 갑자기 positron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너무 쉽게

알려주던 positron이 이상하게도 생각되었지만 컴퓨터가 접속도 안되고 속을

태우고 보니 positron 생각이 난것이다.

아무렇게나 대화하던 사람들에 대하여 메모하던 연습장을 뒤졌다.

다행이도 positron의 전화번호가 있다.

다이얼을 누르려던 순간 나는 망설였다.

12살을 뻥튀겼던 나의 나이....얼굴도 목소리도 숨길수 있었던 대화방에서와는

달리 전화상의 목소리는 12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모가 알아봐달라고 했다고 하까...고모가 시켰다고 하까....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이얼을 돌렸다.  

 

landland : 여보세요...positron님이신가요?

positron : 네...그런데요

landland : 저 landland인데요.  컴이 이상해서요 좀 여쭤 보려구요.

positron : 네...그런데 목소리가 57년생이 아닌데요.

(순간 당황했다...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눈치를 채리라고는....)

landland : 네...사실은 69년생인데요...나이어린 여자라고 하면 친한척 하는거

                싫어서 나이를 좀 속였어요...죄송해요.....

 

이렇게 나의 정체가 들통나면서 나는 컴퓨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자주 통신을 하며 대화방에서 만났고, 남편 역시 나의 비슷한

생각으로 학교를 속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우리는

통신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몇번의 모임을 가졌다는 자칭 '킹카클럽'의 모임이

있다고 한번 나와보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통신에서야 마음껏 친구가 되지만 직접 만난다는것이 왠지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둘이서만 만나자는것이 아니고 몇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 이었기에 용기를 내어 나가보기로 했다.

 

종로 어느 호프집에서의 만남...여섯인가 일곱인가...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정도 되는 소모임이었다.  보수적인편이던 나는 평범하고 소박하던

그들의 모습에 경계심을 풀었다.

특히 모범생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positron은 그 모임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로

선배들의 틈바구니에서 손발을 맞추며 더욱 친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난히 엄하셨던 부모님 때문에 길게 모임을 즐길수는 없었다.

한참 대화의 꽃이 만발하던 중간에 나는 먼저 일어나야 겠다고 했다.

모임 사람들은 "positron님이 바려다 줘요..."하면서 장난끼를 섞어 우리 둘을

묶었다.

나는 처음 나갔던 모임이었기에 사양을 했고, positron은 바려다 주겠다고

따라 나섰다.  나는 기껏해야 버스정류장 정도려니 생각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섰다.

그런데 왠일인가 집까지 바려다 주는것이 아닌가.

집까지 바려다 주면서 positron은 집에 가는 길이 위험하다고 하며 그 후로는

자신이 집에까지 바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더욱 친해졌고 지금은 두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 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positron은 나의 남편으로 나는 그사람의 아내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