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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 난생 처음 커피를 마신 여자 -


BY 주 일 향 2004-09-06

그녀는 무척 귀엽고 앙증맞은 여자였다.

청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깔끔하게 신고 다녔던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그 남자는 필이 꽂혔다.

그녀의 별명은 왈가닥. 그러나 행동에 어울리지 않게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란 무척 힘이 들었다.

애를 태우던 남자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고,

분위기 있는 다방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장소에 먼저 나간 남자는 가슴이 콩콩 뛰었다.

여자를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가슴이 뛰는지.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깔끔한 여자답게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나타났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여자는 남자를 발견하자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걸어와 마주 앉았다.

여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방레지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걸어와

엽차 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는 주문을 요구했다.

남자는 예의바르게 숙녀에게 먼저 주문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커피주세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여자에 이어 남자가 주문을 했다.

 “저는 냉커피주세요.

” 아뿔사! 순간 여자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여자는 다방이라는 곳이 처음이었다.

다방이란곳은 당연히 커피를 파는 곳이라 생각했고

여름에는 냉커피도 판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여자는 커피를 주문했던 것이다.

남자가 냉커피를 주문하자 여자는 갑자기 실내가 덥게 느껴졌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데, 뜨거운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진땀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다방레지가 껌을 요란스럽게 씹으며 찻잔을 탁자위에 내려놓았고,

여자는 다소곳이 놓여있는 뜨거운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커피가 빨리 식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마주앉은 남자가 말했다.

“ 우리 커피 바꿔서 마실까요?”

“ 녭??”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묻는 남자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남자는 씨익 웃으며 얼음이 둥둥 떠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냉커피 잔을

여자 앞에 밀어놓고 대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 순간, 여자는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는 남편이 된 남자에게 물었다.

 “여보, 그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왜 커피를 바꿔서 마시자고 했죠?”

“그건 말야. 뜨거운 커피 잔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당신의 표정을 읽어보니 ‘저 다방에 처음 왔어요.’라고 씌어 있지 뭐야. 하하하.

 "뭐라구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단 말예욧?"

 

여자의 볼은 가을 햇살에 무르익어가는 햇사과처럼 발그레 물들었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 가을 들판 같은 넉넉한 미소가 묻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