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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 방석같은 남자 -


BY 주 일 향 2004-09-06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쌩쌩 찬바람이 부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야 축하예배를 마치고 청년부만 따로 모였던 한 자매의 집이었다.

새벽송을 하기 전까지 다과를 나누며 친교를 갖는 시간이었는데, 이사를 해 교회를 옮긴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조금 낯설고 어색한 모임이었다.

방안에 빙 둘러앉아 찬양을 하는데, 눈을 감은 채 감격에 사로잡혀 찬양을 부르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곱상한 얼굴에 선한 인상의 청년을 보니 한눈에 믿음이 신실한 사람인 것 같아 자꾸만 시선이 갔다.

친교시간이 끝나고 새벽송을 도는데, 우연이었을까. 유난히 내 시선을 끌었던 그 남자와 같은 조가 되었다. 때로는 마주보는 자리에 때로는 바로 옆에 서서 찬양을 하는 그는 선한 인상만큼 바리톤의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날 이후. 교회에서 한두 번 더 그를 보았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날 나의 시선을 끌었던 그 남자는 그만큼 빠르게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삼 년 뒤 겨울.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낯선 남자가 손님처럼 어색하게 청년부를 찾았고, 나는 주인된 심정으로 그 신입회원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삼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의 시선을 끌었던 그 남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모습을 감췄던 이유가 군입대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그의 모습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시선을 끌지도 않았고, 나의 관심밖에 서 있을 뿐이었다.

주일학교 반사와 성가대, 그리고 청년부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나는 자연스레 그와 어울렸지만 서로의 관심을 끌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집에 찾아온 교회 사모님을 통해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 서정이를 좋아하는 청년이 있는데, 혹시 누군지 아니?

- 저를요? 잘 모르겠는데요.

신선한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 철민씨 알지?

- 녜. 그렇다면 철민씨가???

- 전혀 몰랐구나. 철민씨가 서정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데,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나한테

 살짝 고백했어.

- 그럴 리가 없는데.......

황당했다. 평소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나역시 관심밖의 남자로 지내왔는데,

나몰래 혼자 좋아했다니. 어이가 없었고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사모님이 거짓말하실 이유도 없었다.

사모님이 우리집을 찾아온 이유가 명백해졌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시치미 뚝 떼고 나를 좋아한 그 남자에 대해 장난스런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모님의 권유에 나는 못이기는 척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막상 만나보니 그는 수줍음이 많은 남자였다. 숫기도 없고 용기도 없는 그다지 매력도 없는 평범하고 착한남자였다.

그러나 끈기와 인내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특별한 끌림이 없었던 그에게 금방 실증을 느낀 나는 그와의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나를 쫒아다녔고 그런 사실들은 교회안에  빠르게 퍼졌다.

마침내 그와 결혼을 한다고 정식으로 발표를 하자, 모두들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여자가 좋아하면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남자가 좋아하면 결국 이루어지는구나.”였다

우리의 결혼이 이루어지기까지 중매쟁이 역할을 톡톡히 하신 분은 교회 사모님이었다.

싫다고 내가 도망 다닐 때 사모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서정아. 여자는 방석같은 남자를 골라야 돼.

-방석같은 남자요? 그럼 함부로 깔고 앉을 수 있는 그런 남자와 결혼하라는 말씀이세요?

어이가 없어 반문하는 나에게 사모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방석처럼 편한남자를 말하는 거란다. 방석처럼 편하지만 여자가 함부로 하지 않고 잘 내조해주면 남자는 몇 배의 감동을 먹는 단다. 그래서 여자에게 더 잘해주게되고

그런 남자와 사는 여자는 당연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란다.

- 전 싫은데요. 제 사랑은 존경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거든요.

전 방석처럼 편하고 쉬운 남자는 딱 질색이라구요.

- 나도 여자야. 선배로서 말하는 거니까 잘 생각해봐.

사모님 말에 펄쩍 뛰듯이 대답한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끈질긴 그의 구애에 무릎을 꿇은 나는 그와 결혼을 했고, 지난 6월 결혼 17주년을 맞이했다.

7년 터울의 두 딸을 낳았고 방석같은 남자를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보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대.

나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었다.

-맞아. 엄마도 그랬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6월13일. 결혼식을 올렸던 그날이 떠오른다.

신부화장을 하기위해 예정시간에 맞춰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내원아가씨가 재밌다 는 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신랑 분께서 한 시간 전부터 오셔서 바쁘시던데요. 호호

-벌써 왔다구요??

신부화장 할 신부도 아닌데, 신부보다 더 빨리 식장에 온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남편을 놀릴 때가 있다.

-그렇게 좋았어? 얼마나 좋았으면 신부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식장에 가서 설치고 다녔을까?

그러면 남편은 지금도 얼굴을 약간 붉히며 변명을 한다.

-그게 아니라..... 구두도 닦고, ....뭐, 그러느라고 그랬지.


만일 사랑의 저울이 있어 우리부부의 사랑을 잴 수 있다면, 지금도 나보다 남편의 사랑이 훨씬 더 무거울 것이라 확신하며 중년의 날들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우리 딸들이 성장해 결혼할 나이가 되면 나는 자신 있게 딸들에게 말할 것이다.

‘방석 같은 남자를 찾아보라’고

그러면 내 딸들도 나에게 펄쩍 뛸 듯이 대답할 것이다.

“방석 같은 남자는 싫어요!”라고.........

그러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할 것이다.

‘선배로서 말하는 건데, 방석같은 남자와 살아보니 좋은 점이 더 많더라.....그래서 엄마는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