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어른들은 나와 언니를 앉혀놓고 곧잘 이런 물음을 던졌다.
'넌 이담에 어떻게 살고 싶어?'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담하고 이쁜 초가집에 마당에 꽃을 많이 심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아야지.'
왜 언니는 초가집이 소원이었을까....
그건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는 두자매이외에 다른 형제는 없다.
내게도 물었다.
'넌 이담에 어떻게 살고 싶어?'
'마당 넓은 이층집에 개를 여섯마리 기르고 일하는 사람을
많이 두고 초인종을 여러개 달아서 하인 부를때 사용하고...'
나는 이렇게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쟈이안트에 록하드슨에게 갔으면 어울리는 그런 꿈...
주택에 살던 시절 나는 마당에 개를 네마리 길렀다.
언니가 말했다.
'소원성취했네...'
그리고 초인종도 달았다.
시아버님 부를때 사용한 지지배배초인종이 사실은 어릴때부터
계획한 일이 아니었을까.
언니의 꿈도 이루어졌다.
초가집의 꿈이야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때문에 못이루었지만
오손도손 재미있게 사는 꿈은 이루었다.
지금도 언니는 형부와 채팅도 하고 쪽지도 보내면서 알콩달콩 깨를 볶고 있다.
어릴때 언니와 나는 홍역을 함께 앓았단다.
나란히 누워서 고열에 시달리는데 언니는 나죽는다고 난리를 하고
나는 끽소리 없이 고열을 참아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으면서
나는 선천적으로 아픔을 견디는 능력이 뛰어났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단다.
기어다니며서 기둥에 쿵하고 머리를 찌었다.
놀란 어른들이 '굉장히 아프겠다.'했지만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기어다니더란다.
어른들은 내가 다친것을 이제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아야...'하고 왕 울음을 터트렸다는것이다.
참을때까지는 일단 참아보는 버릇이 아기때부터 있었으니
이제와서 어찌 고치겠는가.
아들이 없는 우리집에는 내게 남자아이 옷을 입혔다.
언니는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고 나는 짧은 바지에 상구머리를 했다.
언니는 무용학원에 다녔지만 나는 동네 개구쟁이들과 놀았다.
언니가 학예회에서 견우직녀에 나온단다.
엄마는 내게 모처럼 원피스를 입혀서 학예회에 데리고 갔다.
언니는 견우일까... 직녀일까...
언니는 견우직녀가 만나는 다리역할을 하는 까마귀중에 하나였다.
이제 생각하니 오작교 역할이었던것 같다.
집에 왔다.
'난 그럴려면 무용 안했다.'
나의 말에 언니는 울었고 엄마는 나의 종아리를 때렸다.
나는 억울하게 그날 맞았다.
나는 친딸이 아닌지도 몰랐다.
나는 친엄마를 찾으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촌동생인 남자아이와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었다.
또 맞았다.
아니...아들인줄 알았다가 딸을 낳은것이 내죄냐고...
내가 고추를 어디다 버리고 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