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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지는 샘물 마시러 떠나요


BY 주 일 향 2004-09-02

여행을 하다보면 다양한 길을 경험하게 된다.

탄탄대로를 거침없이 달릴 때가 있는가하면

답답하지만 표정이 살아 있는 낭만적인 소로를 지날 때도 있다.

또한 뜻하지 않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할 때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아는가.

이번 여행은 유난히 많은 터널을 통과했던 것 같다.

 국내에서 제일 길게 설계된 터널을 통과하며 나는

다시 한번 지루하고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터널을 통과한 뒤, 달리는 차 뒤편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어둡고 답답한 터널은 큰 산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우리 가족은 2박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름이 시작되면 여행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분주한 도시를 탈출해 낭만과 여유를 즐기는 휴가이자

일 년에 딱 한 번 주어지는 가족여행이다 보니

우리가족은 해마다 혼잡한 피서지보다는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비경과 유적지를 찾곤 했었다.

그러나 올 여름은 남편의 갑작스런 인사발령으로 인해

휴가계획은 무기한으로 미루어졌고

십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와 싸우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휴가날짜가 잡혔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까지 겹쳐 한가롭게 여행정보를 얻을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

안동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서둘렀던 여행이었기에 더욱 흥분이 되었고

호기심을 자극받은 내 마음은 한없이 부풀었다.

급하게 서두르다보니 지도를 빠뜨렸고,

도로에 익숙하다는 자만감에 무작정 달리다보니 중앙고속도로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유난히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은

점심 먹을 곳을 찾아 그늘진 개울가에 돗자리를 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하며 집에서 준비해온 삼겹살을 구워먹으려고

새로 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켠 순간, 불이 붙지 않고 자꾸만 꺼져버렸다.

몇 차례 시도를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서비스 센타로 전화를 걸어 문의해봤지만

결론은 하자가 있는 가스레인지라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도시락으로 싸온 밥을 대충 먹고 다시 짐을 꾸려 목적지를 향해 달리며

남편은 시작부터 안 풀린다며 넋두리처럼 말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서둘렀던 우리의 잘못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고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에 있다는 것 또한 덤으로 알게 되었다.

 

중앙고속도로에 진입한 우리는 서 안동 인터체인지를 통과해

안동시내로 진입했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도로를 달리다보니 둔치가 보였고,

시원한 강바람을 찾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널따란 잔디위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식수로 쌀을 씻어놓고,

강가를 잠시 걸었다. 코펠에 밥을 안치고 다시 산 휴대용버너에 불을 붙인 뒤.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마주보았다.

어둠 한 자락이 부드럽게 하늘을 감싼 뒤에야 숨어있던 별들이

하나씩 제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익어가는 여름밤을 밝히고 있었다.

그제서야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부드럽게 몸을 매만지고

코끝에 머무는 구수한 밥 냄새가 지친 몸에 새 힘을 북돋워주었다.

금방 달콤한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나른하고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삼겹살을 구워 배부르게 저녁을 먹은 뒤. 눈여겨 봐두었던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오전에 하회마을을 찾았다.

근처에서 간고등어 정식으로 아침을 먹고 나니

따가운 햇살이 하늘을 온통 점령해 양산 없이는 하회마을을 돌 수가 없었다.

 하회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강물이 마음을 감싸고도는 지형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시간 가량 소요되는 마을을 구석구석 살피며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려야했다.

운치 있는 좁은 돌담길을 걸어 들어가니

600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에선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에 마을을 도는 일자체가 바로 더위를 이기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숲이

조성되어 있어서 지친 발걸음을 쉴 수 있다.

 모여드는 인파를 뒤로하고 하회마을을 빠져나와 도산서원을 향해 달렸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이 서원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았던 곳으로

천 원짜리 지폐에 새겨져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척 흥미로워했다.

사당 문에 그려진 흐릿하게 바랜 태극문양이 독특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서원을 구경하고 나서 강줄기를 따라 달리다 그늘진 다리 밑에서 잠시 발을 담그고

늦은 점심을 지어먹고 나니 시간은 느릿느릿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루는 유적지를 둘러보고 하루는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안동근처에는 리프팅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숲이 울창한 계곡이 없었다.

그래서 집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기 위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가족의 여행수칙이 있다면 첫째는 한 곳에 계속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유적지나 관광지를 둘러보고 맑은 계곡이 눈에 띄면

물놀이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텐트잠은 피하고 있지만

값비싼 팬션이나 호텔대신 저렴한 모텔에서 여장을 푼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집보다는 조금 불편한 잠을 자고나면 집이 한층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휴가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가족들만의 오붓한 추억이

해마다 쌓여가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 서서

되돌아보는 우리가족의 여름 여행은

서둘러 떠났던 여행인만큼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