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이 지나 버렸다.
나는 여름의 끝에서 끙끙 앓으며 며칠을 보냈다.
아직 신열이 내리지 않아 몸은 한기가 들고 머리는 욱신거리지만
그저 망연자실 누워서 견딜 수가 없어 어디 갈 데라도 있는 사람처럼 찬물에 머리를 감았다. 창 밖은 햇살이다.
그런데 난 움츠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며칠을 그렇게 앓았다.
햇살속으로 자박자박 걸어가면
어쩌면 감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탓일까.
한 줌도 남겨놓지 않고 다 내줘버린 듯한 생기.
나는 마른 풀처럼 푸석이며 흩어져 버릴것만 같다.
나는 아직 삶의 언저리를 떠 돌며
소용돌이속으로 휩쓸려버릴것만 같은 두려움때문에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아직 여기
이 언저리에서 서성이며 서 있는 것일까.
마흔의 삶이 한 줌의 무게도 지니지 못한채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 것일까.
어디에도 실체가 없는
나의 이 어눌한 살이가 이제는 정말 숨차다.
도서관 계단을 오르면서 난 생각했다.
길은 어디나 있는 데 나는 지금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인적이 없는 숲속 꼬불한 산길이든 환히 뚫린 신작로길이든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거라고.
단지 좀 더 수월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놓쳐버렸다고 그렇다고 길 한 복판에서
멈추어 서서 가야할 길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입안으로 신물이 고인다.
쓰디쓴 신물을 삼키며
나는 웅크린 어깨를 펴고 환히 웃자고 말한다.
내가 웃어야 내 옆에 있는 그 누군가도 웃을 수 있을테니까.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해 활짝 웃어야 한다.
나를 위하여 웃어 준 힘들게 웃어준 사람이 분명 있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