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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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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고라 염소


BY 라메르 2004-08-02

장이 서는 날이라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수퍼처럼 물건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수가 많은 것 더 더욱 아니지만 수퍼를 찾는 일보다
장을 기웃거리는 걸 나는 더 좋아 한다.

장판엔
갓 건져 올린 생선의 팔딱임과 같은, 심장이 쿵쿵 뛰는 거
같은 살아 있는 삶의 움직임이 있다.
 
난 삶이 무료해 질때면 길가에 질펀이 앉아 쪼글한 무우
말랭이 마냥 마른 손으로 푸성귀를 담아 주는 어떤 할매의
손끝이 그리워 지곤 한다.


10년 만의 폭염이라 하는데...
간간히 사람들이 더위속을 걷고 있었다.
폭염에 아스팔트가 혹 녹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장날이면 좌판을 벌려 놓고
계신 단골 할매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 곳엔 할매가 보이 질 않는다.
분명 여긴데.....
그 할매가 늘 앉아 있던 좌판이 우리은행의 출입 계단 바로
앞쪽이었는데.....
지금은 낯선 사람이 자릴 잡고 있었다.

계속 두리번 거리는데..... 누군가가 어이 이리와 하는데 그 목소리가
우리은행의 옆 골목 중간 쯤에서 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허연 수건을 머리에 찔끈 동여 맨  이.
그 할매가 맞다.
자리를 빼앗겼어.
한달을 앓다 와 보니 저 망구 지 자리라 깔고 꼼짝 않네?

할매의 허연 수건은 젖어 있다.
땀에 젖은 걸까?
젖은 수건에 햇볕이 내리쬐니 수분이 증발하면서 김이 난다.

할매는 머리에 늘 허연 수건을 질끈 동여 메고 계셨다.

제작년 가을이었다.
그때 지자체 단체장을 뽑던 때 였다.
할매의 좌판 옆에 있던 사십대의 남자가 그 할매의 아들이라는데
단체장 선거에 출마를 한다는 것이다.
집 앞 포도밭을 팔아서 선거 자금을 충당한 아들은 모두가
예상한데로 낙선을 하였고 포도밭 만 사라 졌다.

포도 밭의 소출로 목돈을 만질 수 있었던  할매는 이제는
푼돈을 만들어 생활을 겨우 꾸려 나가게 되었다.

햇볕을 종일 쏘인 할매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할매의 하얀 양은 다라이에도 폭염이 내리꽂혀 손을 데면 금방데일
것 같은데 할매는 쭈글한 손으로 다라이를 들어 한쪽으로 밀어
놓으며 그 쪽에 앉아 보라고 한다.

다라이를 덮었던 삼베 보자기가 툭 떨어지자 노란 어린 콩나물이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숨을 헉헉 거리고 있었다.
빛이 닿은 곳은 퍼런 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고 속상타.
구석쟁이라 장사가 안되야 이고 다녔더니 어깨 팔 다리가 아프고만.
배추 2단, 고구마 줄기 3단, 깻잎, 호박... 쏠쏠히 팔긴 했지만서두.
어느 놈의 짓일꼬?  보자길 열어 봤음 닫아 놔야제.
갔다 와 보니 퍼렇게 쇘다.
누가 사가겠노? 하는데...
제가 살께요. 하니
아이다  쇄가 맛이 없다. 안된다 하신다.
내가 봉지를 열어 파란 콩나물을 담고 배추 시래기 담고, 양파를,
꽈리 고추를 담았다.
제법 커다란 봉지가 배불뚝이가 되었다.
배불뚝이 봉투에 또 무언가를 넣어 주려 하는 할매와 받지 않으려는
나와 옥신각신하다 할매의 허연 수건이 머리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수건은 할매 뒤쪽에 있던 밥사발에 닿았다.

밥 먹다 배달갔다 왔제. 하는데 밀어 놓았던 밥사발안에 퉁퉁불은
밥알에서 술냄새가 난다.
요즘 허리도 아프고, 숨이 가쁘고, 맴도 아파가 밥먹기 성가스러우면  쇠주에
밥 말아 먹제 하신다.

일하면 큰일난다 하는데..... 어데 움직일 수 있는데 일 안해도 될 팔자가 하는
할매의 손아귀에 있던 밥주발에서 퍼져 나온 알콜 냄새는 햇볕에
금새 퍼지면서 내 후각으로도 들어와 나를 취하게 하는 것 같았다.
취한 걸까?
허연 수건을 쓴 할매는 어느새 초원을 누비는 앙고라 염소가 되어 어른 거린다.

앙고라 염소는 남아 공화국 초원지대에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강우량이 적은 이 지역엔 풀이 적어 건기엔 주로 가시가 달려 있고
많은 즙이 있는 식물인 노스라는 식물이 자라는데 이 지역의 앙고라 
염소의 생존에 열쇠를 지고 있다.
그러나 노스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먹이에 접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고 우기에는 자라는 어린 풀을 먹으려다 가시에 털이 걸려
볕에 말라 죽기도 한다고 한다.

노스를 취해야 만 생존이 가능한....생존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노스에 접근해야 하는 앙고라의  운명.


난 햇볕 내리쬐는 거리에서 노스를 얻기 위해 가시덤불에 접근하는 늙은
앙고라 염소의 슬픈 모습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