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의 끝자락이라 올 듯 말 듯 구름 속에 해를 감추고
나들이 나선 나그네의 속을 타게 합니다
비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할일이고 나는 내가 옮긴 발자국만큼
내 추억의 일기장으로 남을 여정 길을 택했어요.
아침 이른 시간부터 서두른 탓에 한국의 나포리라 불리는 통영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죠.
가끔씩 느닷없이 뿌려대는 여우비를 맞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심 쓰듯 말끔히
개이기도 하여 오히려 나같이 집을 나선 이들에게는 다니기에 덜 덥고 괜찮았어요
통영은 몇 번 다녀간 곳이기도 해서 옛날에 둘러본 곳은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만 들은 해저터널을 들어가 보기로 했죠.
(출처 통영시 )
1931부터 1932년까지 5년여에 걸쳐 일제강점기에 축조한 바다 밑 해저터널이더군요
지금은 사람만 통행을 하고 있었고 옛날에는 자동차도 다녔다 합니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걸어서 통행을 해보니 너무 시원하고 좋았어요.
습기는 좀 많았지만
그곳에 전해오는 얘기로는 일본이 그 터널을 축조한 이유가 임진란 때 한산대첩에서
우리나라 성웅 이 순신 장군에게 패해서 죽은 영혼들이 그 바다에 떠돌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보건데 자기나라 영혼들을 우리민족들이 밟고 다니는 꼴을 못 봐서 그 터널을
축조하여 바다 밑으로 통행을 하게 했다니 믿거나 말거나 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쉬 들 뜨고 쉬 식어버리는 우리의 정서에 뭔가 의미를 남기는 얘기이기도 했습니다.
(시민 문예회관에서 내려다 본 통영항)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 보다 행복 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네라
-유치환-
(청마시인의 생가 재현)
청마시인은 1908년에 태어나셔서 1967년도에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참 아까운 연세에 타계하셨죠.
영원히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행복이란 시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느낌은 따뜻하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충무마리나 리조트에서 내려다 본 통영의 맑은 바다전경)
전날부터 몸의 상태가 감기기가 있고 온몸이 열이 있더니 아침 일찍 매물도 가는 배를
타야 되는 데 도저히 몸이 말을 안 듣더 군요
결국 섬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고 솔직히 말해서 섬에 들어가 몸이 많이 아플까봐
일부러 안 들어간 것도 있긴 합니다.
거제도로 행선지를 바꿨습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우리민족의 뼈아픈 과거의 아픔이자 이룰 수
밖에 없는 통일 염원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있는 학부형들께서는 방학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체험학습으로 동행해도 좋겠더군요
(유적공원)
(거제계룡산 일대 17만명에 이르는 전쟁 포로들을 수용했던 그 당시 그림)
(휴전협정이 되고 포로들을 수송했던 열차)
(급식소와 포로수용천막)
(포로들을 수용했던 옛자취)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둘러보며 참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 때의 아픈 역사를 대변해 줄 옛자취는 그의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이어서 현장감이나 그 당시의 아픈 역사를 체험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점이 많았다는것 그저 입장료 내고 한번 둘러보는 코스로는
우리의 선조들이 껶었던 뼈아픈 상처와 아물지 않은 아픔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하기에는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고 선조들이 지켜낸 이나라의 현실은 그리 무지개 빛만은 아님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모든것이 안정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우리, 나 부터 현실을 직시하며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희망적인 내일을 기약해야겠죠
(학동 몽돌 해변)
날씨가 계속 흐린고 비가 부슬 부슬 뿌린탓에 사진실력도 없지만
화면이 흐린 점 양해 하시고 봐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