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었다.
겨울비 였다.
여름에 내리는 장마비의 시원스럼과는 달리 겨울비는
찬바람에 스산함을 몰고 왔었다.
그 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 버릴것 같아 마당 귀퉁이
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었다.
연기속으로 멀리 사라진 시간을 기억이라는 신비의
마술은 마치 어젯일처럼 생생히 날라다 주었다.
비가 와서 였을까? 눅눅해진 장작은 쉽게 타질 않아
애를 많이 태웠었지.
아궁속 장작을 까치발 돋움하듯 세로로 세워 틈을 만들어
불을 피우면 장작은 꺼질 듯 하면서도 용케 불씨를
서로의 몸에 옮겨 놓았다.
타오르는가 싶다가도 바람이 불어와 센 입김을 날리면
불씨는 위태롭게 팔랑거리다 이내 꺼지면서 타다 남은
까만 재는 시커먼 연기를 토해 내 눈자위를 따갑게
하기도 하고 매캐한 내음은 목구멍을 쑤시기도 했다.
켁, 케엑~ ~
스무살 그때는 삶이 타오르는 듯 하다가 일순간 바람에
훅 날아가 꺼져 버리기도 하는 불씨의 모양을 닮고 있을
때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단지 타 오르는 불꽃
만 보았었다.
"너 우는 거니?"
"아뇨 매워서요."
눈물 콧물이 범벅된 내 얼굴을 바라 보던 엄마가 물으셨다.
사실은 울고 있었다.
희망이 사라 질 까봐 나는 무서워서 울었었다. 그 때 내가
알고 있는 희망은 대학이었다. 그 것 말고 누가 나에게
다른 희망을 말해 준 적도 없었다. 다른 곳에 희망이 있으
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불꽃을 피워야 해. 그래야 내 희망이 살아 날 수 있을 것 같아.
난 아궁이에 얼굴을 바짝 들이 밀고는 입김을 세게 몰아 넣었다.
후~ 후~ 후~
폐 속에서 힘차게 흘러 나온 날숨은 잠자던 연기속의 불꽃을
다시 일으키고 있었다.
불꽃은 희망이다. 후~ 후~ .......
미친 듯 불어대는 입김에 불꽃은 살아나 드디어 장작개비가
다시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장작이 눅눅할 땐 불쏘시개를 충분히 넣어야 한다. 뒷곁에 마른
솔가지를 가져다 넣어라 하던 엄마의 당부를 뒤로 한 체 난 불쏘시개를
대신해서 입김을 불어 넣어 불을 피워 냈다.
스무살이었던, 아직 미성숙한 난 스스로 타오를 수 없는 습기 찬
장작마냥 내 스스로를 세울 힘이 없었다.
내 삶을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가 필요했는데 그때 내겐 그것이
사라졌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고 3 예비고사를 앞둔 며칠 전 아버지는 왼쪽에 편측 마비가 왔다.
중풍이라 한다.
너희가 어른이 될때면 여성도 사회생활을 거의 하게 될꺼다.
더 이상 현모양처가 여성의 이상적인 삶이 될 수는 없을게야.
일을 갖도록 해라. 전문 직종의 일을 갖도록 어릴 적 부터
준비를 해라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이젠 촛점이 없는 눈동자를
갖고 계신다.
나 어떡해야 하는데요? 울고 불고 하는 딸이 가엾은 엄마는
무리를 해서 입학금과 하숙비를 마련해 주셨다.
가까스로 희망을 얻은 나는 밤새 동그란 모양의 희망을 가슴에 담고
설레었었는데 하룻밤 새 동그란 희망은 가벼운 검불이 되어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밤 동안의 일이었다. 그 날밤 내곁에 있던 돈은 사라지고
말았다. 밤 손님의 소행이었다.
입학금 마감일은 내일로 다가 오는데...
내일.
내일이 지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후~ 후~ 후~
불꽃은 피어 올랐다. 내 입김은 성능 좋은 풀무였다.
후~ 후~ 후~
입김은 불꽃을 키웠다. 시뻘건 불꽃은 구들장 안으로 꾸역
꾸역 기어 들고 있었다.
"이젠 대학을 포기하렴. 너의 운이 거기 까진 가 보구나."
입학금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담담히 말씀하셨다.
불꽃은 저리 휘황한데 내 희망은 피어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사그라져야 하는지...
겨울의 저녁은 어둠을 참으로 빨리 잡아 당기고 있었다.
희망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깊어 가는 어둠속에서 발 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때 어디선가 어둠을 뚫고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예쁜 꽃잎 찾아 날아가고 싶어~ ~ 푸른 하늘 향해 날아가고 싶어~ ~
처음엔 가까이에 있는 k대의 교정에서 들리는 듯 한 소리는 광활한
우주의 저 멀리로 올라 가고 있었다. 노래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난 아궁속에 벌겋게 달아 오른 불꽃들을 하늘로 날렸다.
수 많은 불꽃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 갔다.
갑자기 내 몸 구석구석이 빨갛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날고 싶었다. 날자~ ~ 날아 보는 거야.
난 그날 저녁 눈물나도록 그리운 희망을 찾아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2편은 기차에서 만난 인신매매범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