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영화관에(트로이)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이 뜯기어 나간지가 꽤오래인것 같다............................... 유일하게 극장이라고 영화를 상영하던곳..고교시절엔 문화체험 시간으로 영화관람 시간이 주어지면 와글와글...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처르르르..처르르르르 들려오고...가끔씩 찌찍거리는 화면이 쥐죽은듯 그속에 박혀 있는 아이들의 눈속에서 파문을 일으키곤 하던 그곳...
영화관에 얽힌 추억이라 해야 몇조각 이러저리 허공을 떠도는게 고작이지만 오래묵은것이 헐릴때는 나에게도 아쉬운 마음이 절절했었다. 영화를 즐겨보지 않은 나에게도 유일하게 서있던 그곳의 헐린 빈자욱이 눈이 써늘하도록 꼭꼭 찔러오는 아픔이 있었다..
밖엔 비가 오락가락....흩날리고 있었다.. 이채널 저채널 수없이 돌려대던 남편이.."00시네마에 전화함 해봐라.." 오후 상영이 몇시인가 ... 헐리고 없어진 영화관 대신 조그만 영화관 하나가 시내 중앙통에 자리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좌석이래야 겨우 200여석이나 될까한 소극장 수준의 극장이다..
따닥따닥 계단을 한참을 올라 프로그램 벽보앞에 서 보니..트로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 막 앞시간 상영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이 네모난 문상자속에서 와르르르 쏟아져 나왔다..
20여년만에 극장 앞 작은 문앞에 선 나의 가슴이 떨림으로 방망이질 쳐대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문을 잡아 빼곡 열고 들어가니 TV나 컴화면에 익숙해져 있는 눈속에 커다란 사각형이 눈이 비좁도록 흘러 들어 왔다.
애국가도 울리지 않고 바로 시작되는 영화 첫장면에서 귀가 터지도록 커다랗게 흘러나오는 소리와 눈이 부시도록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치 그들과 한 화면속에서 나자신이 움직이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영화광이라 이름붙여줘도 전혀 손색없는 남편은 벌써 그 장면들속에 빨려들어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고대로 굳어 버렸다. 침대 안쪽에 누워 참많이도 영화만을 보는 남편 어깨넘으로 흘깃흘깃 훔쳐본 영화는 하나도 처음과 마지막을 기억하는게 없다..
처음으로 가슴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영화란걸 보게 되었다. 고대 그리이스는 많은 힘약한 나라들을 굴복시켜 동맹을 맺어 세력을 엄청나게 키우고 있었다... 트로이도 역시 왕의 두왕자인 핵토르와 파리스가 동맹결의 파티장에서 건배의 잔을 드는것으로 순조롭게 평화가 유지되는듯 하였다. 트로이의 작은 왕자 파리스가 아가멤논왕 동생의 아내인 헬레나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면 말이다..
트로이로 돌아가는 배안에 전쟁의 불씨인 헬레나가 타고 있었고 그로인한 전쟁의 명분은 한인간의 야심에 불을당겼다. 아가멤논왕에겐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 장수 아킬레스가 있었지만 전쟁을 별루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그가 전쟁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예에 대한 버릴수 없는 욕심때문이었다.
트로이 해변에 오만명의 군사를 실은 배들이 모래를 밀어올리며 닻을 내리는 순간에 꼭 쥐어진 주먹속에 땀이 흥건히 젖어 들었다. 가끔씩 팔에 맨살이 닿는 남편의 체취가 영화속에서 같이 흐는적 거리는 느낌으로 다음장면들에 눈이 멎었다. 몇차례의 싸움이 반복이 되었지만 결코 쉽게 열리지 않는 성문에 그리스군이 지쳐가고 있을무렵 자신의 왕에 대한 아킬레스의 증오가 극에 달해 전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난 여기에서 두남자를 만났다 나에겐 오직 조국과 가족과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는 것만이 해야할일이라고 부르짖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멋진 한남자 트로이의 큰왕자 핵토르와 자신의 이름에 대한 명예의 멍에를 뒤집어 쓴채 전쟁에 뛰어들었지만.병사들은 욕심많은 야심에 찬 왕에겐 아무것도 아니라고 피를 토하며 후회하는 한남자 아킬레스..
그의 가슴속에 전쟁만이 들어 있을듯했던 아킬레스가 그래도 내게 인간적인 냄새를 맡게 해준건.트로이의 왕자 핵토르의 사촌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였던것 같다.영화로 말하자면 그 설정이 다소 억지스러울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어찌하여 아킬레스의 사랑하는 사촌동생이 핵토르의 손에 죽임을 당하면서 두남자는 트로이 성문앞에 칼을 뽑아 목숨건 결투의 장면앞에 서게 된다 칼을 한번씩 휘두를때마다 숨이 멎어버릴듯한 가슴이 자꾸만 울렁인다.
꼭 쥐었던 주먹이 힘없이 스르르 풀리는것과 동시에 그큰 화면속엔 피투성이가 된 핵토르가 적막을 삼키고 누워 있다. 아킬레스의 달구지에 밧줄로 묶인채 끌려가는 핵토르의 시체와 그 부인의 절망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영화가 절정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시체를 제손으로 거두고싶은 부정은 적군의 막사에 늙은 왕이 숨어들게 하였고.그 부정에 감격하여...당신은 그래도 내 왕보다 훨씬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아킬레스..12일간의 장례기간에는 공격을 하지 않겠노란 약속과 함께 사랑하는 여인을 자유롭게 보내주는 그도 역시 멋진 남자로 나에게 다가왔다..
핵토르는 죽었지만 열리지 않는 성문.. 모래위엔 그리스병사들의 시체가 바람에 옷깃만을 날리며 누워있고.커다란 목마한마리가 유유히 서있다. 해변엔 빈배들만이 파도에 흔들흔들 ..그리스군은 영락없이 패하고 간 흔적들만 이곳저곳에 뿌려놓고 있었다. 트로이왕국의 백성들은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를 벌였고..방심하고 열어둔 성문안으로 까만 어둠을 타고 목마속에서 흘러내리는 그리스병사들이 성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기나긴 전쟁의 끝은 그러했다.. 핵토르가 비밀의 통로를 아내에게 일러주면서 도피처를 만들어 주었고...명예에 목숨을 걸었던 아킬레스는 사랑하는 여인앞에서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으며 목숨을 다해 가고 있었다..
내 뇌리속 허공에서 떠돌아 다니던 트로이의 목마는 그 영화 한편으로 조각조각 모아져서 퍼즐을 끼워 맞추듯 내 가슴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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