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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전거이야기


BY 호박녀 2004-07-08

장마에 들어서서 그런지 오후 4시인데도 해가 쨍쨍하지 않고 적당한 구름에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다. 이때다. 나가는 거다.
밥하다 말고 나가는 차림이라
헐렁한 티셔츠에 15년된 낡은 반바지.. 머리는 부스스지만 나가는 거야...

자전거를 도로까지 끌고 가다가
인적이 뜸한 아파트 뒷길에서 부터 타는데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타는 게
서툴러서 타는 내 마음도 조마조마하다.

오늘은 인적도 더욱 드물고 햇빛은 거세지 않고 물도 많고 새도 많다.
바람은 왜 그리 상쾌한지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내가 아는 온갖 레퍼토리를 다 섭렵하고 여기가 천국인가 무릉도원인가
한껏 자연의 평화로움에 취해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헬멧도 있고 자전거도 보통 자전거가 아니고 뭔가 프로같은 냄새나 났다.

저만큼 가다가 '아 저 아저씨한테 오르막 내리막 길을 어떻게 타는지 물어봐야지'하는 용기가 생겼다. 전 같으면 나같은 고상한 주부가 창피한데 어찌 길가는 아저씨한테 말을 건단 말인가하고 지나쳐갔겠지만 그런 두려움과 편견이 많이 가신 상태라
'아저씨'하고 용감하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 뭐하나 여쭤볼께요. 제가 자전거를 타긴 타는데 오르막 내리막길 갈 때
원래 그렇게 힘이 드는 건가요? 어제 제가 화암 사거리를 목표로 하고 갔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와버렸거든요'
'자전거 이리 줘봐요' 하더니 기아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설명을 자세히 해준다.
'자 이제 한번 타봐요'
내가 타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구 아줌마...자전거 처음 타는 방법이 틀렸네. 안장이 높아야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데 아줌마 안장은 꼽추가 타는 높이여...안장을 높이고 한쪽 발을 페달에 올려서 굴려가면서 타는 거여..글고 발도 팔자로 벌리지 말고 오므려서 타야 하고....'

으매으매... 나는 오르막길 가는 법을 물으러 갔다가 내 자전거 타는 것이 온통 잘 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네..아유 부끄러워라 그렇게 엉성하게 타면서 신나하고 남한테 자랑한 것이 다 헛것이었네..
아저씨가
'저어기 몸 안 다치는 풀밭에서 그렇게 헐렁한 반바지 입지말고 쫄바지 입고 헬멧쓰고 장갑 꼭 끼고 내가 가르쳐준 자세로 타는 연습을 하루만 해보슈..그러면 골반도 오므라 들고 관절에 무리가 안 가서 몇 십만원짜리 보약 지어 먹는 거보다 훨 낫수...'

아저씨가 먼저 나보고 타고 가라는 것을 아저씨가 보는 게 신경쓰이니까 먼저 가시라고 해 놓고 이제 알았으니 잘못된 자세로 타는 것도 부끄럽고 하여 그 자전거를 다시 타지도 못하고 '아이고 이제 어떻게 새로 배우나'하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 먼 갑천에서 우리집까지 자전거를 끌고 40분이나 터덜터덜걸어왔다.

오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여정도 이러지 않았나 싶다.
처음 형성된 고정관념으로만 살다보니 내 인생은 어그러지기 시작했고
뭔가 이게 아닌 듯 싶었지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 지도 모르는 채로 살다가
바닥을 치고 나서야 남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난 표면 위만 잘 못 된 줄 알았더니
좀 더 깊숙한 곳에 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의 삶.

내 생각만 옳고 나하고 다르거나 내 맘에 안 들면 '저 놈은 나쁜 놈' 하면서
끊임없이 불평만 늘어놓다가 언제 어디서부터 궤도이탈을 했는지 너무나 멀리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서 멀어져 온 나의 삶.

이제는 점점 더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지만 처음엔
그 혼란을 견디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음 여기를 더 멋진 말로 표현해야 하는데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임)

오늘 자전거를 타면서 또 하나 배웠네...
모르면 물어라~ 그리고 배워라~ 그래서 알면 고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