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사실
다리품 팔며 길찾아 돌아다닐때는 잘모르다가
지나간 일을 휘익 돌이켜 보면서
'맞아, 그때 참 행복했어. 그때 참 즐거웠어.'
나중에서야
이런 귀한걸 느끼게 되더군요.
그것도 어디어디 무슨무슨 대단한곳에서 대단한것을 보았노라 하는것보다
눈발이 풀풀풀 내리는 겨울날 지리산 화계사앞 자판기에서 아이들은 율무차
어른은 커피를 뽑아마시며
나뭇가지 이쪽저쪽으로 바삐 움직여다니는 청설모 바라보던 아침.
어느 여름 한낮 피아골 맑은 계곡물에 발담그고 마시던 진국막걸리와 은어회 맛.
멀리보이는 마이산의 암벽을 바라보며
눈쌓인 벌판에서 불피워 놓고 냄비에 끓여먹던 우동맛.
이른아침 대관령의 신선한 풍경....
이런것들이 기억속에 잠들어 있다가
요즘처럼 마음이 팔려온 망아지 뛰듯 요동을 쳐대며 안정이 안될때
불쑥 고개를 내밀며
'이런날도 있었네. 그만하면 재미지게 살었구먼'
하고 스스로 인생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로마의 하루를 자세히 적겠노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약속을 제혼자 해 놓고는
시간이 꾀 흘렀지요?
남편도 몇일간 다녀가고
이사 준비에 마음도 가로등아래 하루살이떼처럼 어지러히 흩날라 다니고있어...
도무지 차분히 앉아서 로마 이야기를 적는게 힘이 들어서요. ^*^
아뭏든
제 능력되는대로
계속 쓰도록 할겁니다. 니스의 푸른바다,가우디와 피카소의 바로셀로나, 아름다운왕자의 속눈썹이
생각나는 모나코,알프스 소녀가 오빠와 물장난치던 스위스,낭만의 센강,민족의 영산 백두와 한라,
아소산이며 불루마운틴,아리산.....
지난번
주먹만한 삼겹살 상추쌈을 입에 넣으려던 참에
꿈에서 깨어났던 아쉬운 순간을 얘기하며 로마의 하루 오전이야기를 마쳤었지요?
꿈속의 제행복을 날려버린 남편은
김치를 사오고
저는 밥을 지었습니다.
(이거, 일반호텔에서 하면 안되는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뒤로도 간간이 육개장 국물이나 라면국물에
밀가루반죽을 뜯어넣어 수제비까지 끓여먹었습니다.
그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으니
인혜엄마께서는 꼭 돈이 들더라도 리조텔등 취사가 허용되는 숙소를 미리 예약했다가
가끔씩 얼큰한 우리의 음식으로 힘을 돗구도록 하세요.)
따끈한 밥에 즉석 우거지국, 삶은소세지, 김치,멸치로 든든히 점심을 먹은후
말끔히 뒷정리를 마치고
다시 호텔을 나섰습니다.
스페인 광장을 찾아나섰습니다.
스페인 광장.
상상해왔더랬습니다.
아름다운 연인들이 손잡고 팔랑팔랑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의 눈빛을 주고 받는
낭만으로 가드---윽 찬 스페인광장을.
그런데 말입니다.
낭만은 오간데 없고 쨍쨍 햇빛만 내리쬐어요.
땀은 뽈뽈 흐르고요.
걷고걸어서 찾아간 스페인광장에서
귀찮아 죽겠다는 아이들을 세워 놓고 팡팡 사진 한방씩 찍어준다음
얼른 트레비분수를 향해 발길을 돌려버렸습니다.
아마도 낭만... 연약한 낭만이가
쨍쨍 햇빛에 말라죽어버렸나보다 생각했습니다.. ^*^
다음 목적지는 트레비 분수...
광고에 잡지에 부지기수로 나오는 로마의 유명지, 트레비 분수로 가려고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있었지만
저희 가족은 트레비분수를 보는것도 관광이지만
그냥 로마의 뒷골목을 헤메는것.그것도 관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길을 물어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먹고 캔맥주도 마시고
묵은때가 덕지덕지 켜켜이 쌓여있는 회색빛 건물들 사이사이, 골목에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들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보니
어머!
낭만이가 거기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더위를 싫어하는 낭만이가
족히 천년은 그자리에 서있었을 꼬질꼬질 석회암 건물들
그늘 밑으로 피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해가 꼴딱 넘어가고
이글이글 뜨겁던 스페인 광장에 서늘한 그늘이 내리면
그때에
오드리헵번이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오르내리던
스페인광장의 계단으로
부드럽고 긴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며
낭만이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걸어나올것 같았습니다.
트레비분수....
깨끗한 물이 철철철 흐르는데
쉬원했습니다.
관광객이면 모두다 그러하듯
저희가족도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분수물 속에 동전을 한개씩 던지고
물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한참을 쉬고
다시 걸어서 나보나 광장으로 가는길에
빵떼온에 들렸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전 신전이라지요?
돔형식 지붕 중앙이 둥그렇게 뻥 뚤려 있었는데
그 뚫린 구멍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니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생각하며
그 오래되고 거대한 건물 구경을 한참 했습니다.
거기에 누구.. 유명한 사람 무덤도 있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적어놓는건데..^*^
골목길을 다시 걸어 나보나 광장으로 갔습니다.
벤취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유럽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의 악사 공연도 보고
예술활동인지 생계수단인지 모를
동전받을 깡통을 앞에 놓은채 벌이는 갖가지 퍼로먼스 구경도 하고
노점상에서 엽서도 샀습니다.
고상한 한국인 여행가족도 만났습니다.
똑같이 생긴 엄마와 딸, 아빠, 이렇게 세식구였는데
엄마와 딸은 그야말로 엘레강스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제게 식당안내를 해 주더군요.
"저기 말이죠.. 지난번에 왔을때만 해도 한국식당이 한군데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한군데 새로 생겼더라구요. 음식맛이 아주 좋아요..
한번 가보세요. 음식을 제대루 하더라구요."
아주머니는 웃음가득한 얼굴로 정보를 제공해 주시고
아저씨께서는
"안너이 계세요옹"
인사를 남기시고 총총총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뒤로 아이들은 그 인상깊은 인삿말
"안너히 계세요옹"을 몇일동안 저희들끼리 흉내내며
즐거워 하더군요.
나쁘죠? 어른의 말투를 흉내내며 재밌다고 웃고 노는거?
그래도 저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엄마는 더 나쁘죠?^*^
다시 걸어서
로마 시청사를 지나 산마르꼬 성당인가 진실의 입을 보러 갔습니다만
쇠창살문이 내려져 있어
그냥 밖에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서
그날 낮에 보았던 포로로마노쪽으로 걸었습니다.
햇님이 사라지고 나자
공기가 시원해지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보이는 모든것에
정말 오래된 역사가 베어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된장속에 오랫동안 깊숙하게 박혀있던 장아찌가
콤콤하고 구수한 된장기에 절어있듯
퀘퀘한 로마의 건물에는 로마의 역사가 스며있다는 느낌이
더욱 진해졌습니다.
어슴프레 내려앉는 땅거미 효과지요.
포로로마노를 지나
휏불을 밝히고 있는 에마누엘 기념관앞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테르미니 역으로 갔습니다.
저녁식사...
역앞에 죽 늘어선 핏자가게에서는
커다랗게 구운 핏자를 잘라서 무게대로 팔고있었습니다.
그걸사다 호텔에서 콜라와 맥주와 먹으니....
정말 그맛이 환상이었습니다.
핏자는 역시 이탈리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