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살 가야돼? 아이고 이 넘의 팔자.
그걸 뒤집어 생각해 볼까나? 사는게 심심하고 따분할까봐
부침게 뒤집 듯 이살 또 할 수 있다니? 요렇게.
그러나 저러나 집이 있어야 이사를 가는디 잡것들 빨랑가라 서두르긴...
이럴땐 똥 배짱 두둑해야 하는 건디...
인자 나 심각해야 하는디.. 이사를 정말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디..
우선 인구 밀도가 낮은 곳,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은 물론이고
많은 식구 함께 살려면 주거 공간 최소 50평은 넘어야 하는디..
그리고 사람한테 데어봤으니 인심 꼴란데 피하고. 그럼 산으로 갈꺼나
울 아그 학교는 어쩌구......
이런 조건 맞아 떨어지는 집이 나 여그 있소 이렇게 나와 줄리
없고...
부동산 알아보니 꼴난 집 소개로 돈 몇 푼되랴 싶은지 감감 무소식
오늘은 이 뇨자 두 발로 뛰기로 했지.
오늘 하루. 이제 시작인데 벌써 다리가 아픈 건 내 정신력이 문젠겨?
주책없는 슬관절은 다리 전체로 통증을 퍼뜨리고.
오늘은 이만...
집으로 향하여 앞으로 하려는데 저 만치서 허적거리며 허리를 굽혀
걷는 노파가 보인다. 노파의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낯설지 않은 지팡이. 지게 작대기를 뚝 분질러 만든 지팡이. 지팡이
의 머리 부분은 v자로 되어 있어 부러진 지게 작대기란 걸 알 수 있다.
"어! 저 지팡이는..." 나의 외마디 소리에 그 노파가 뒤를 싹 돌아
보았고 우린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2년 전.
나는 교통사고로 이 지역의 종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6인실의 병실이었는데 침상이 널널하게 비었는데 그 지팡이의 주인인
노인은 굳이 내 옆 침상에 자리를 틀었다.
그 노파가 처음 오던 날 밤 내 무릎은 수난을 당했다. 슬관절의 인대 파열로
당시 나는 캐처처럼 무릎 보호대를 하고 있었는데 침상에 누워 있는
내 무릎의 보호대를 그 노파가 지팡이로 탕탕 치는 것이 아닌가.
아~ ~ 내지르는 비명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그 노파 나이롱은
아니군 하는 거였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린 친하게 되었고 늘 붙어 다녔다. 내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때도 노파는 그 지팡이를 잡고 먼저 앞장 섰다.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는 나를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옆에선 할매의
걸음걸이가 더 불안정 한데도 나의 보호자라 우기는 할매는 귀여운?
장난꾸러기였다.
내가 입원했던 2달 동안 장염으로 입원을 했다 퇴원한 할매는 다시
장염으로 입원을 해 내 옆 침상으로 오게 되었다. 2번째 입원했을
때 할매는 내게 비밀을 얘기 했다. "나 요번엔 아프지 않아 심심해서,
오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지. 쉿- 비밀." 이라 했다.
아들 넷을 둔 할매는 모두 출가 시키고 술 주사가 심해 혼자 사는
셋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늘 술에 찌든 아들과 사는 것이 지옥
이라 했다.
그런데 할매의 비밀은 곧 들통 나고 말았다. 식욕이 왕성한 할매는
식사하는 모습을 아들한테 들켜서 지옥같아 하는 집에 따라 들어 가야
했다. 할매가 퇴원하던 날 외출을 다녀 온 나는 할매가 떠나는 걸 볼
수 없었다. 텅빈 침상에는 편지 한 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야 보애라. 나 셥셔비 할미다. 나 가다. 자아 나애라.샤량해다. 라고
쓰여 있었는데 짐작컨데 (얘야 보아라. 나 섭섭할매다. 나 간다 잘
나아라. 사랑한다) 그런 내용이리라.
그후로 가끔 할매의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만날 수 없었고.....
오늘 이렇게 우연히 할매를 길에서 만났다.
우린 아직 2년전의 그 시간과 공간에서 그리 멀리 와 있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할매는 이 근처에 사신 다고 하셨다. 오늘 할매가 잡은 지팡이는 더욱
손아귀에서 많이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나와 물리 치료실 다니던 2년
전 보다 허리가 좀 더 구부러져 있는 것 같았다.
할매가 산다는, 할매가 전에 지옥이라고 말하던 그 곳은 낮은 싸리문 안에
둘러 싸인 작고 아담한 남향 집이었다. 장독대의 장항아리가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 주당 아들 몰래 감춰 둔 매실주 먹어 볼까나? 하며 내 놓은 매실주의
향은 할매의 정과 어우러져 달콤 쌉쌀한 맛을 혀끝에 올려 놓았다.
그냥 이 곳에 푹 눌러 앉아 살고 싶은 본능이 살짝 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취기가 올라 오기전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이성과의 접전도 잠시 난
할매가 싸 준 된장통을 가슴팍에 안고 집을 향해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