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용 과일이 떨어져서 주로 거래하는 매장에 수박 배달을 주문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오는 배달 사원은 우리 직원마냥 친근하다.
싱싱한 걸로 골라 오라고 당부도 했고, 꼭지도 싱싱하길래 안심하고 받았다.
그러나, 손님상에 내려고 잘라보니, 먹지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썩 상태가 좋지못하다.
먹어보니, 사각거리며 씹혀야할 속살이 입안에서 슬며시녹아 버리고 만다.
수박이란 아무래도, 겉을 보고 판단하긴 어려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문학의 쟝르 중 수박을 소설에 비유했다.
단단한 푸른 껍질 속에 빨간 속살,
한통의 수박에는 버려야할 껍질도 반은 포함 되어 있다.
또, 그는 시는 밤이라 했다.
까슬한 밤송이 안에 또 다시 껍질을 갖은 밤,
겉껍질을 까내어도 다시 속껍질..
시를 읽고 쓰기가 그리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수필은 뭐라했을까?
수필은...곶감.
그냥 감이 아니라, 곶감이다.
가을 햇빛에 잘익은 감을 껍질은 깎아내고,
바람과 햇빛에 말려 놓은 곶감.
아마도 좋은 수필은 형식에 의해 내용이 가려져서도 안되고,
내용 또한 햇빛과 바람에 감을 말리듯
오래 생각하고, 오래 익힌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고
내 가슴에 감나무 씨앗 하나를 심었다.
딱딱한 씨앗 안에 있던 하얀 숟가락같던 작은 떡잎은 어느날, 연초록 싹을 틔웠다.
그러나, 세번의 가을이 지나도
아직 어린 감나무는 잔가지 끝에 흰 감꽃이 하나둘 피어날 뿐
곶감을 만들 감을 매달아 키우지 못했다.
간혹 작은 가지 끝에 청미래 열매만한 감이 야무지게 달렸다가도
성급한 추수에
아래로 툭 떨어져 버리는 가벼운 나의 글,
풋감을 먹은 것처럼
나의 글은 아직 너무나 떫다.
옆집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
파란 가을 하늘에 주황색으로 빛나던 탐스런 열매를 부럽게 바라 본 어린 내가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남의 뜨락에 심어진 실한 감나무를 부럽게 바라본다.
다만, 서른해 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어린 날엔,
마당에 앉아 옆집에서 얻어 먹은 감씨를 그리 뱉어 심어도 싹이 트지 않더니,
이젠
내게도 날마다 자라 언젠가 탐스런 열매를 매어달 감나무 가지가 높은 하늘 향해
자라난다는 거다.
그리고 ...가을 또 가을이 지나다보면,
치렁치렁 감을 꿰어
가을 햇살 품은 바람에 널었다가
찬 겨울 눈 속에 쫀득한 곶감을 먹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 떫은 내 글도 언젠가는
알맹이 중에 알맹이만을 남긴
곶감같은 글을 쓰게 되었으면 하고,
곯아 가는 만이천원 짜리 수박을 잘라 먹으며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