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도나우 강가로 간 우리 일행은
나무밑에 눕거나 앉아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도나우강에서 수영하거나 썬텐하는 사람들 구경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 그렸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두눈을 바짝 뜨고 째려 보니...
그냥 멀건 강물이었을뿐
강물이 노래를 부르지도 춤을 추지도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눈으로 직접보고 확인하는것만이 최상은 아닐지도 몰라.
내가 그동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내마음대로 그리며 상상해왔던짓을
이아이들은 할 수 없게 됐어.이미 실제를 보아버렸으니.
그러나 걱정할일은 아니지.
아직 두눈으로 본것보다 보지못한것이 훨씬 더 많으니
앞으로도 꿈 꿀 수 있는 것들이 무진장 많이 남아 있는셈이니까.
맑고 더운 날씨,
그러나 나무그늘은 시원했습니다.
한참 늘어지게 쉬고
강한 햇빛이 한풀꺽기는가 싶은 시각이 되어
우리 일행은 도나우 타워로 향했습니다.
도나우 타워가 있는곳은 인공섬이라는군요.
인공섬안 전체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영국에서본 근위병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웃고 떠들고 뛰고 즐겁게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만큼 숲속에 중국식 건물이 앉아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팔각정 기와 건물.
음식점인듯 했습니다.
남편이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말야. 옛날에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일일 찻집을 했거덩.
존일에 쓸라구 했지.
불쌍한 사람들 도와 줄라구.
그런데
이익금이 별루 안남은거야.
그래갖구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저렇게 생긴집에 들어가설랑
한상 때려먹었네..히히"
"그래갖구."
"신나게 먹었는데 돈이 모자르는거야."
"그래서?"
"그래서 냅다 발랐는데.."
그때 어린 여대생이 질문을 해오더군요.
"근데 아저씨, 뭘 어따가 발르셨어요?"
하하하하 웃던 남편이
"에이, 국어 사전에 안나왔남?
발르다: 토끼다.킥킥킥"
내가 나섰습니다.
"아니, 애들 듣는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러구 논 얘기를 하는거야?"
여대생이 다시 질문을 하더군요.
"그럼, 아주머니는 뭐하고 노셨어요?"
그러자 큰딸래미가 톡 튀어 나서서 하는말이
"저희 고상하신 어머님께서는
낙엽떨어지는 벤취에 고요히 앉으셔서
시를 읽지 않으셨겠습니까?"
뾰루퉁한 목소리였습니다.
저희애들은 확실한 엄마편이면서도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한 엄마가 아빠를 공격하는 일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남편 흉을 보다가도
딸래미가 들어오면 뚝 그쳐야한답니다.
그렇게 도나우 타워에 올라가 비엔나 정경을 내려다보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왈츠공연이 있다기에 시민공원으로 갔는데
잘못된 안내 책자인지
사람들만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어디에서도 왈츠공연은 하지않았습니다.
공원안 호수에서 백조 한떼와 놀고 있던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안내책자를 보고 찾아왔다가
왈츠공연은 못보고 백조들과 노는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냥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잤는데
그날 저녁 둘째아이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도나우타워 밑에서 돈을 벌려고 모자를 놓고 부메랑 던지는 공연을 하던
난장이가 너무 불쌍했고 괞이 애써서 찾아가기만 하고 왈츠도 못보고 와서
맥이 빠진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픈데
다른사람들은 배가 안고프단다.
에이, 그냥 자야지."
둘째인 큰아들은 이 여행을 하는동안 키가 부쩍 자랐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도 키만큼이나 부쩍 자랐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