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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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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꿈이로세


BY 후지 2004-06-14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외국의 생활상을 담은 여행기이다.

‘외국’이란 곳을 두어군데 다녀오기도 하고 살아도 봤으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세계여행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새발에 피’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실현인 것이다.

‘좀 있다’하는 남자를 만나 힘 하나 안들이고 세계 여행하는 꿈을 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미모발이 그런 남자를 만날 기회조차 원천봉쇄 당하게 했었다.

원천봉쇄 당했다는 것은 사실일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라마에서의

그 흔한 재벌집 아들들이

어찌 내 눈에는 한명도 띄지 않았더란 말이냐.

 여자의 지적수준을 미모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남자가 있을까? (정말 있을까?)

그런 남자가 설령 만에 하나 있다하더라도 내 지적수준이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것도 아니올시다다.

확연히 드러나는 미모보다는 지적수준을 운운하는게 나한테는 유리하다

싶지만 이것 또한 실속있는 대응법이 아니다.

사실 나의 지적수준이라는 것도 미모만큼이나

아슬아슬한 수준이니까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교양이 넘치고 흘러서 그 교양으로라도

밥 비벼 먹자고 덤비는 남정네가 없는 바에야 외모가 첫째 아니겠는가 말이다.

하긴, 남자란 족속들이 뭘 알겠는가?

미모가 덜한 여자들이 가지는 펄펄 넘치는 매력과 섹시함을.(하긴, 잘 드러나지 않으니

멍청한 족속들이 알 수 없는게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미모는 딸리지만 튼실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찜했을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자니

세계여행이라는 것이 ‘내게는 먼 당신’으로 굳혀져 버리더란 말이다.

(니가 벌어서 가지? 라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돈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가고 싶은 곳은 많고, 공짜로 오라는 데는 없고...

그래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간접 경험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이었고, 입맛만

다시다가 침이 마를 지경인데......


어제는 딸아이와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것이 에펠탑이네, 저 다리는 퐁네프 다리인가? 뭐 이러면서

연기자들이 부럽다며 궁시렁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흘낏 쳐다보던 딸아이가 그런다.

“엄마, 내가 파리로 시집가서 엄마 모시고 살게.”

어라라, 뭔 말씀을 이리도 이쁘게 한다냐 싶어 뽀뽀라도 해줄 기세로,

“오마나! 정말? 나 진짜 파리에 가보고 싶어. 나도 정말 데리고 갈 거야?”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 입을 체 추스르기도 전에

딸아이의  한마디가 나를 생각 많은 여편네로 만든다.

“그래야 내 아이를 엄마가 돌봐 줄거 아냐?”

“............헉!”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린 것이 뭘 알고 그랬겠나 싶기도 하면서

묘한 감정이 다각도로 일렁였다.

하긴, 서른살이 넘어 “엄마가 최고야. 평생 엄마랑 살래.” 이러고 주접을 떨며

엉겨 붙으면 길지 않은 명줄마저 오그라들겠다싶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놈의 말뽄새가 괘씸한 것은 괘씸한 것이다.

나쁜 기지배.

모르겠다. 할머니가 돼서 손주들 돌봐주겠노라고 자진해서 짐 싸들고

이곳저곳 따라 다닐지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더냔 말이다.


어렸을 적 꿈을 100% 다 이루고 세상을 떠나는 이가 몇이나 될까마는

이제는 더 아득해진 꿈을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살련다.

자식에게 내 꿈을 넌지시 비추는 몰상식한(?) 일일랑 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됐다.)

대신, 남편에게는 삼년에 한번 꼴로 강짜를 붙을 것이다.

“내가 남자만 잘 만났으면......에고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