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나는 어떤 남자들이 잘생겼는지를 몰.랐.었.다.
정말이다. 개미똥 만큼의 거짓말도 보태지 않은 말이다.
오죽했으면 "도대체 어떤 남자들보고 잘 생겼다고 하는거야?"라고 남편에게 물었었을까?
(저 여편네가 뭐라는겨? 지금 날보고 못생겼다고 돌려 말하는걸까? 뭐 이러면서
남편은 찌지직 나를 째려봤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들처럼 똑같이 달린 두 눈으로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남들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바가 모두 다르기 때문일게다.
그때는 나에게도 젊음이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젊음이 안달복달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고, 그래도 힘주면 뽀빠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만큼이라도 알통이 솟아나던 젊은 남편이 있어서(나의 눈길이 한 곳으로만 쏠리던)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연기자면 연기로 승부해야지 외모는 무슨......이라며 '잘생긴 남자배우' 어쩌고 하는 신문기사를 단칼에 씹던(?) 시절이 있었다.
그레고리 펙이니, 험프리 보가트니(물론, 생긴 사람들이다.그것도 자~알. 그러나 생긴 것만 보고 좋아했던게
아니란 거다. 그들의 연기를 보고, 그 자연스러운 연기 때문에 좋아했었노라고, 그 때는 믿었었다는 야그다. 감히.)
그러나......
30대 중반부터이던가?
드디어 잘생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였다는 것은, 연기를 떠나 외모만으로도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 정말 잘 생겼군.
그렇다고 잘 생긴 것에 대한 어떤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정리가 된 것도 아니다.
막연한 느낌이고, 그 날의 정서인 것이다.
케빈 코스트너의 청바지입은 뒷모습을 보고 3일 낮밤을 머릿속으로 영화를 찍더니(주연은 물론 그와 나다.)
키아누 리브스의 빡빡머리, 흔들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도 필이 꽂혔으며, 브래드피트의 갈기머리를 보기 위해 4번의 되돌리기로도 '가을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었다.
아, 그리고 또다시 뉴페이스 한 남정네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왔으니 그 이름, 에릭 바나.
웃기지도 않는 헛 이름을 써가며 (에릭 '바나나'라고..ㅎㅎ) 그를 칭송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우리나라 에릭(?)도 좋아하게 되었노라는......ㅋㅋ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세월만 먹는 것은 아닐진대,
'철'이란 것이 40 전에 들었다가 40 이후에 빠져 나가는 것인지, 민망하기
이를데가 없다.
그냥 좋은바에야 어쩌겠냐마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보고자 원하는 것임에야,
이제야 내 눈에 들어와 내 가슴에 꽂히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내 몸에서 빠져 나가는 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런가?
이렇게 젊음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인가보다.
나의 젊음은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