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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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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자 늦은 깨우침


BY 후지 2004-06-07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늘도 토했노라고...

머리가 아프다며 침대에 풀썩 쓰러져 눕는다.

20여일 전부터로 생각된다. 머리가 아프다며 자꾸만 토했던게.

뭘까?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그건 아닌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그다지 높은 녀석이 아닌지라 자기 성적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드러내곤 했으니까.

"반에서 10등안에 들면 잘한거 아냐?"(이렇게 말하면 9등이나 10등인 것이다.)

들은 척 만척하는 지 엄마 귀에

 물어 뜯을듯이  입을 들이밀고는 긍정적인 답을 들으려 애쓴 녀석이니까.

학원에 다녀온 아이에게 저녁밥을 챙겨 주면서 은근하게 물었었다.

"엄마가 너에게 스트레스 많이 주지? 공부 잘하라고 말이야.

그러지 말아야 하는거 아는데 그게 잘 안된다. 미안해.  그리고 엄마외에 누가 너한테

스트레스 주는 사람있니?"

아는 바도 없고 집히는 바도 없어서 막연하게 물어본 나의 물음에,

아들 녀석은 씹던 밥을 체 삼키지도 못하고 울먹이기부터 한다.

선생님이 불러서 상담을 했더란다. 선생님이 보기에도 아이가 이상했던가 보다.

자꾸만 머리가 아프다며 토해대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 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단다. 자기를 못살게 구는 친구의 이야기를...

헉! 나는 정말 놀랐다.

내 아들녀석이 친구로 인해 그리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한번도 눈치 채지 못했었기에.

빌린 게임책을 그 친구 녀석이 뺏아가 가길래 돌려달라고 덤볐다가

교실 뒤로 끌려가 여기저기 맞았단다.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레슬링 파트너로 아들녀석을 지목해서 이리 눕히고, 저리 뒤집고를

반복하더라고.

그러고보니 아들녀석의 코가  두어번 멍이 들어 온 것이 기억났다.

물을 때마다 책상에 부딪혔노라고, 했었다.

더이상 물을 것도 없이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한 시간여의 대화가 끝난 후, 그 친구집에 전화를 했다.

아들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댁 아들 이름이 자주 거론돼서 이래저래

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묻고 싶은 것도 있어서 전화드렸노라고, 그래서  좀 뵙고 

말씀 좀 나누자고. 4명이서 같이.

 

그 아이 엄마의 말씀인즉,

그 아이는 공부 때문에 짬이 나질 않고, 더구나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이기때문데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기 쉽다고, 했다.

아들녀석이 그 친구에 대해 나에게 한 말과는 180도 다른 말이다.

아하! 이렇게 다른 거구나. 엄마가 생각하는 자기 자식에 대한 생각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그 아이에 대한 생각에

이리도 큰 갭이 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

다시 아들녀석과 다른 각도로의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엔 아들녀석을 '피해자'로 단정해서 나눈 대화였다면

이번에는 아들녀석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단정하에 나눈 대화였다.

자기가 먼저 때렸노라고 했다. 책을 돌려달라고 엎치락뒷치락하다가 지가 먼저 쳤노라고 했다.

혹시 그 친구에게 마음 상할 말을 먼저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냥 싫었던 친구였단다.

니가 싫어한다는 걸 그 친구도 알았던 것일테지.

심리학 용어로 '투사'라는게 있지. 자기가 먼저 싫어하면서 상대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느끼는 것!

'맞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격분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은 객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 엄마와의 전화통화였다.

나 또한 옆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내 아이의 긍정적인 한 면만을 보면서

우리 아이는 이렇노라고 다른 이의 생각은 뭍어버리게되는 아집으로 살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죽을 때까지 맹목적인 사랑을 벗어날 수는 없을테지만 가끔은 좀더 다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봐야겠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 대해 100% 알고 있노라고 장담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알게 됐다. 

모든 일에 한 박자 늦게 알게 되고, 그래서 뉘우치며 사는게 인생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