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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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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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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안녕하십니까?


BY 바늘 2004-06-01

 이번 제5회 아줌마의 날 은상을 받게된 저의글을 늦으나마 이곳에 올려봅니다.

 

지난날 이곳에 하소연과 넋두리 하던날들의 종합편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날 마당님과 안단테님이 오셨군요  인사라도 나눌것을 아쉽습니다.

 

 

따르릉~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목소리 다듬고 모니터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고객님을 향하여 최대한 상냥한 음성으로 안녕하십니까?

하루에 200여명의 얼굴도 모르는 고객님을 불러 보면서 상품 설명을 시작합니다.

나의 직업은 텔레마케터 일명 전화 상담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접시의 강도를 실험하기 위하여 접시 깨는 직업에서부터 침대 스프링 실험을 위하여 하루 종일 침대 위를 맨발로 걷는 직업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20대 중반 그때 당시 알맞은 결혼 적령기에 혼인하여 아들 낳고 딸 낳고, 금융계에 종사하는 안정된 직업의 남편을 만나 알콩 달콩 살림 불어가는 재미에 풍덩거리며 남들로부터 부러운 눈길도 솔찬히 받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산도 깊으면 골도 깊다고, 어느 날 결혼 20년 제가 서있는 자리를 바라보니
그저 눈물과 한숨...

은행에 첫발을 들여놓은 남편은 5년여 근무를 끝으로 같은 금융계지만, 증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88년 서울 올림픽 시절 증권의 붐을 타고 황금 밭 같았던 좋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대리 직함으로 입사를 하였던 남편은 그사이 지점장까지 수월한 승진을 하였고

아침 일찍 장이 열리기 전 회의를 하기 위하여 조기 출근하는 남편에게 직원들 아침 간식으로 케잌 쿠키, 김밥, 샌드위치 열심히 만들어 전해 주었습니다.

그게 행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착하게 잘 커가고 늘 성실한 남편을 보면서 스스로 이만하면 '나 참 시집 잘 왔네'라고 단 웃음도 널널하게 짓고 살았습니다.

알뜰 살뜰 살림 불려가며 집안 구석 구석 윤나게 문지르고 하나 둘 늘어가는 통장을 보면서 행복은 이거구나 미소 지으며 지내왔습니다

막내 며느리로 시집와 16년간 홀 시어머니 모시고도 살았습니다.

어머님이 IMF 시작되기 바로 전 10월에 노환으로 별세를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아파트 우체함에 은행에서 대출금 회수를 부탁하는 독촉장이 날아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금액이 맨 처음 오백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회사에 평소 친분이 있던 직원 부인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작은 아파트를 한채 더 전세끼고 마련했다면서 형님네는 퇴직금 정산하신 걸로 뭐하셨냐고 물어오는데 너무도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 하니 할말 없다며 집에 못 들어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달래어 밖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미 빚으로 퇴직금을 다 써버린 후였습니다.

은행마다 카드 빚으로 넘쳐났고 그 독촉은 매일 매일 전화로 아니면 우편함에 산처럼 모여지고 어렵사리 살뜰하게 모아 장만한 보금자리 아파트 마저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여기 저기서 빚으로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기사가 자주 올라왔고 심지어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끔직한 상황까지 종종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결코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아 마음이 쓰리고 저려 들었습니다.

내 나이 40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림만 살았던 전업 주부에서 행주치마 걷어 제치고 과연 다시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무엇을 한단 말인가?

아들아이는 대학1학년 딸아이는 여고생

경제적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가까운 그 시절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 나온다 했는데......

어느 날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텔레마케터, 전화 상담원을 모집한다기에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내어 보았습니다.

연락이 오고 창업하는 신설회사에 당당 1차 2차 시험을 통과하여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6월 입사를 하여 그간 여러 종류의 상품 판매를 하였습니다.

시외전화 유치, 국제전화 유치, 자격증 취득하여 보험업무, 화장품 우수고객에게 감사의 해피콜, 수도 없이 많은 업무에 투입되면서 정말 단 하루의 무단 결근 없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업무 실적 면에서나 회사에서 받는 신뢰도나 인정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작년 연말 회사에서 처음으로 수여하는 최우수 모범직원 표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영업 실적표가 계시판에 매일 매일 공지되는데 거의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던 상위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깊은 좌절 속에서 나도 남처럼 깊은 한숨과 눈물 속에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작년 대학에 다니던 아들아이는 군입대를 하였고, 고3이던 딸아이는 변변히 학원 하나도 챙겨주지 못했건만 수시 모집으로 대학에 합격하여 지금은 어여쁜 여대생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거져 얻어지는 공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괴로움이라면 그저 기차가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종착역은 아직 멀었다고 스스로 위로 하고, 인생의 무대에서 잠시 색다른 배역을 맡았다고도 생각을 전환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적게 잃는 것이 돈으로 잃는 것이라 합니다.

건강함이 아직 내 곁에 있으니 전 아직 작은 것만 잃었다고 위안하렵니다.

혹시 대한민국의 아줌마로써 그것도 40대의아줌마로써 실패의 늪에서 좌절에 빠져있다면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했습니다.

아이들 곁에서 튼실하게 어머니! 그 어머니 그 고귀한 자리 그것만은 포기하지 말고 지켜나갔으면 싶습니다.

분명 길은 있을 겁니다.

따르릉~~~~여보세요~~

오늘도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도 고객님 상냥한 목소리로 찾아갑니다.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