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담은것도 없고
그럴싸한 빽그라운드도 없고
손에 쥔것도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나는
그저 온갖 착한척 내숭으로 포장을 해서
녹녹찮고 만만찮은 남자를 꼬여내
결혼했다.
한번 울뚝밸이 솟으면
동네 앞뒷산이 흔들리게 왕왕 거리며
악 쓰고 뒹굴던 더러운 성질을 깜쪽같이 감춘채.
여기까지 듣고 나면 자연스레 기대가 된다.
그들이 결혼후 서로 조율을 하느라
와장창 와장창 소란스런 신혼을 보내고
급기야 기가 막힌 반전으로
하녀자세로 시집온 색시가
안하무여자격 남편의 기세를 싹뚝 꺾어버리고
여왕마마로 등극하여
손끝으로 남편을 마당쇠같이 부리며
이날 이때까지 편안하게 살고 있단다.
이런 얘기가 이어져 나와야 속이 쉬원하게
'세상사는 다 그렇게 공평하게 돼 있어'라며
손벽을 치고 크게 웃을 수 있겠지만
난 여기서 그런 얘기를 꾸며 쓸 수가 없다.
왜냐면,
그건 아이 셋 낳아 오물조물 기르며
일주일이면 닷세이상 술먹고 자정넘어
혼자 들어오는 법없이 꼬리에 대여섯명씩 죽 달고 들어와
술상 차리게 하고 라면 끓이게 하고
잠자다 일어나 모기잡게 하고
이웃집 여자들이랑 못 몰려다니지 못하게 하고
내입갖고 내맘대로 말도 못하게 하는
남편의 까탈스런 시집살이를 꾹 참고
그의 자기 멋대로 입맛을 맞춰 가며
나의 '착한척'하기는 이날 이때까지 초지일관됐기 때문이다.
'착한척'하기는 원래부터 착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선
참 많은 시련을 통한 수련을 필요로 하는 미련한 짓이다.
새벽녘 택시비를 들고 나가
가로등아래 서서
술로 채워진 풀장에서 풍덩풍덩 자맥질 하다 돌아와
비척비척 고꾸라질 듯 택시에서 내리는 남편을 기다려보라.
정말 대로변을 이리저리 뒹구르며 보도 블럭이라도 파내 가며 악을 써 대고 싶어지지만
착한부인은 그러면 못쓰는것이다.
착한척 하려니 별 수 없이
택시비에 팁까지 얹어내고
흐느적 거리는 남편을 어깨에 걸쳐
넘어지거나 부딪쳐 어디 상하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와야 하는것이다.
착한척 하기 정말 힘든날 많았다.
비틀비틀 남편이 비틀비틀거리는 꼬리를 길게 달고 들어오는날
그 꼬리중에 한도막이 수박을 들고
비틀비틀 계단을 주욱 올라오다가
그만 수박덩이을 비틀 놓쳐버리는 것이었다.
둥그런 수박은 비틀 통통통 비틀 통통통 계단을 굴러 내려가다
푹석 깨지면서 비틀 통통통 비틀 통통통 계속 굴러서서
온 아파트 계단을 수박 천지로 만들어 놓은날.
뱃속에서 악악 소리치는대로 해버리자면
그 비틀꼬리들을 왕창 계단 밑으로 떠다 밀어서
모두다 때굴때굴 집밖으로 굴려버리고 싶었다.
술먹고 누워 양쪽 볼을 개구리 울음주머니 부풀리듯
불룩불룩 거리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볼때면
신고온 양말을 벗겨서 푸하 거리는 입을 콱 틀어 막고도 싶었다.
술먹고 어디다 세워놓았는지 모르는 자동차 찾으러 이리저리 헤맬때는
집에 있는 알류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가서
찾기만 하면 그놈의 자동차 유리를 모조리 때려부수고도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왜냐면,
착한척 해야하니까.
이렇게 착한척 하면서 십수년을 버티고 살았다.
아이들은 건강하고 착하고 공부잘하고
남편은 더없이 심성곱고 예쁜 마누라를 고마워 하며 행복해 했다.
착한척하기 성공에 뿌듯해하던 나는
두어달전에 안면마비가 왔다. 구안와사.
착한척 잘못하다가는 골병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