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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를 타다


BY 몽련 2004-05-05

관광버스를 타다

최순옥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고뇌의 씨앗 들을 거둬 들여
공활한 마음의 텃밭에 심으며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삶의 곤고함과 일상의 권태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구로
계절의 씨줄과, 햇살의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 낸
반짝이는 사월의 비단길을 밟으며 집을 나서 보지만
언제나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열띤 눈동자와 과장된 몸짓 속에서
숨길 수 없는 허무를 읽게 된다
잡다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오가는 술잔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빳빳이 풀 먹여 세운 셔츠 깃 같던 위선은
알코올로 분해 되어진, 끈적한 분비물로 후줄근히 젖어 들고
번쩍이는 싸이키 조명아래 핏기 없이 둥둥 떠 있는 얼굴들과
비릿한 열기를 뿜어 내며 광란하듯 흔들어 대는 몸짓,
쾌락에 팔아버린 영혼으로 무아를 헤매는 표정은
마치, 생명 없는 자동 인형을 보는 듯 하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벌떼들처럼 왕왕대며, 신들린 듯 좌우로 흔들어 대는
엉덩이들이 나를 슬프게 하고
이렇게라도 털어내야 하고 비워내야 하는
우리 소시민의 삶에 연민을 느끼며 가슴이 아릿해 진다

오늘 나는 얼만큼 나의 밭에 기형의 씨앗들을 심었을까?
아니면 털어 냈을까?
제발, 썩지 않는 쭉정이가 되어서
두렵고 무서운 기형의 싹들이 자라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살지만,
오늘 하루 나의 마음에 어떤 종의 씨앗을 얼마나 많이 심었는지
새삼 두려워진다

흔들리는 관광버스는
다정한 이웃들이 오가며 토해낸 권태와 곤고함의
씨앗들로 인해 시큼한 냄새로 가득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느 길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져 어둑해진 차창 밖을 내어다 본다

2004,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