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목을 길게 빼고
아래 연못을 내려다 보았다.
뿌연 하늘이 비는 보이지 않고
안개가 낀것 같기도 하고 구름이 낀것 같기도한데
어제 예보로는 오늘 전국이 비가 올것이라 했으니
연못을 봐서 물위에 파문이 일면 비가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옆 도랑물을 끌어들인 호스에서 떨어지는 파문만 넓게 퍼지고 있을뿐
비가 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이틀전 깨어나온 병아리를 보러 나갔다 들어 오는 내게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비가 오느냐고 묻는다.
"게으른 사람 일 안하기 좋을만큼 와요."
그랬다.
아주 커다란 스프레이를 하늘에서 뿌리는것 같았다.
우산을 쓰기도 그렇고 안 쓰자니 축축할 것 같은,
연못위에 자욱도 못 만드는
아주 잔잔하고 보드라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비가 내리는날이면
부지런한 사람은 덥지 않고 시원해서 일 하기에 좋은 날일 것이요,
게으른 사람은 비가 오고 있으니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같은날씨에도 이렇듯 사람들이 생각하고 움직이는게 다른데
인간이 평생동안 얼마만큼 많은 선택의 귀로에서
제각기 다른 선택을 해가며 다른길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것. 언제나 선택을 신중히 해서 후회를 덜하는 인생을 만드는것이 최선이다."
내가 늘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다.
월요일이면 늘 온종일을 혼자 있는 남편에게
의미 있는 대답에다 묘한 웃음까지 선사(?)하고는
차창을 열어 손까지 흔들고 나갔다.
오후가 되면서부터는 제법 빗줄기가 보일만큼 내리기 시작하더니
내가 집에 도착할때 쯤엔 다시 아침에 내렸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종일 뭐 했어요? "
"다롱이랑(강아지), 병아리랑 씨름했어. 수탉이 병아리를 찍어서 병아리 목에 상처가 생겨 수탉 따로 떼어 놓느라구.
다롱이는 집에 안들어가구 비를 맞으며 시위 하길래 내가 지고 말았어. 할수 없이 풀어 줬지."
혼자만 나돌아 다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없는것도 아닌데,
온종일 맥없이 놀지 않았음을 알리려는듯,
불만 없이 하루 일과를 웃으며 설명하는 남편이 고맙다.
언젠가 내가 남편에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가장 잘 선택한게 무엇인거 같느냐고 물었을때
남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뜻 나오던 대답이 생각난다.
"자기를 선택한 거 ! "
글쎄,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나도 그렇게 쉽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닐것 같다.
나는 늘보 같은 남편에게 무척이나 속을 태웠고
결혼 초기엔 혼자 속으로 후회를 많이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그러다 보니 이만큼을 살아 온것이다.
같이 살아온 시간만큼의 미운정 고운정이 두께가 되어
이젠 어떤 앙금도 삭힐수 있을 만큼 되었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의 건강이 나의 가슴을 조인다.
내일 재검진을 받기위해
오늘 저녁부터 약을 먹기 시작하는 남편이
속으론 안스럽고 걱정스러워 죽겠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척 더 극성부인의 말투를 해 댄다.
"얼른 약 먹고 자요, 내일 새벽부터 또 약 먹으려면요."
온종일 내리는 비에,
내 마음까지 흥건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