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인연은 참으로 기이하고 가지 가지이다
설리 언니글에 가끔씩 등장하는 화가 아저씨
가끔 궁금하기도 했는데 ...@@@
언니가 올리비아와 날 불러대시더니 화가 아저씨네 집에 놀러가자고 하신다
--다른 언니들은 쑥을 캐고 머우대를 자르고 다들 각자의 흥겨움에 바빴음 --
낡은 농가를 개축하여
손수 황토방을 만들고 성능 좋은 전축에 음악을 울려서 들을 수 있는
시골 동네의 잇점을 살려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아가시는 분이다
비아와 나는 이리 저리 둘러보며
마치 책꽂이 처럼 잘 짜놓은 레코드 판을 이것 저것 뽑아 보았다
시렁위에 올려 놓은 오강단지와 옛날식 대접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이불을 찾아내기 까지 했다
-방바닥이 뜨거워서 타버린 구멍이 보이는 ㅎㅎㅎ
황토방 앞에는 옛날식 가마솥이 있고
언제나 땔 수 있는 화목이 아궁이를 메우고 있었다
엊저녁에 불을 지핀 방바닥은 아직도 온기가 쓸만했다
녹차를 주신다고 노란 주전에 물을 펄펄 끓이신다
먼지 구덩이에 알맞게 예술인의 자유를 만끽한양 수염이며 머리도 제멋대로 자란듯한
대단히 운치있는 화가 아저씨다
호박죽을 먹는 호박들의 모임이냐고 그러시더니
본인은 서울 인사동 출신이라는 걸 무척이나 강조하신다
그럼 저는 종로구 충신동 출신이라고 ....
세월을 거슬러
1960년대
서울 그리고 충신동의 지도 아니 약도를 같이 그려내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고
한국인은 두명을 통하면 전부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절대로 그르지 않다
너무도 깜짝 놀란 것은
그 화가 아저씨가 바로 우리 동네 우리집 앞집 옆집에 사신 분이라는 거
나는 그 당시 무척 어린 꼬맹이였고
더구나 대로변에서 교통사고를 입고 반도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후
강력한 보호속에서 외출이 금지된? 채 살았고
근 일년을 넘게 용인에 가서 요양 생활까지 하고 왔으니
아저씨는 어쩌면 날 직접 본적이 없으실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 세대를 한 동네에서 같이 지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런가
그 아저씨는 S대 회화과를 다니는 대학생으로 일본식으로 이층이면서
동네에서 제법 크고 마당 넓은 집에서 하숙을 하시고 계셨으니....
동네에서 유명한 정육점을 비롯한 충신 시장의 아기자기한 모습
월탄 박종화씨의 본가
조각난 판자로 지어진 구멍가게 --지금 가판대 정도의 크기
그 앞에서 4원짜리 우윳빛 하드를 팔았는데
너무 너무 먹고 싶었다고 말하자 아저씨가 내게 사 주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말씀하신다
ㅎㅎㅎ --난 낯선 아저씨 아니 오빠가 그걸 사준 기억은 절대로 없음 ㅎㅎ--
복덕방
그리고 장애인 남편을 모시고 사는 술집 여인
-가끔은 극장 홍보물 앞에 붙은 광고 덕택에 얻는 극장 초대권을 주신 분
큰 키타를 메고 낙산으로 올라가는 김정호 오빠의 모습 --솔직히 난 못 봤음 --
그리고 얼굴에 점이 있는 예쁜 언니의 이야기
--그언니가 이쁘니까 아마 이 아저씨가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 언니의 동생을 대학 때 내가 공부를 가르쳤음 )
당시 이름이 문성여고 (예일 여고의 전신) 의 모습
-그 문앞에 서서 언니들이 지각하거나 이름하여 복장 불량으로 규율부 언니들이나
선생님들에게 혼나는 걸 보는 게 아침에 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
동네에 있었던 이층집 평상이며
그 당시 유행하던 왈가닥 루시라는 텔레비젼 드라마
이화장--이승만 대통령 관저--
으로 가는 물줄기와 전기를 같이한 동지였다는 것 까지 강조하며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설리언니와 비아도 어머 ~어머 ~하면서 놀라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야말로 동네 오빠를 40년만에 만나고 왔다
빽투더 휴처라는 영화가 실감 날지경이다
40년전 그 추억속으로 타임 머신을 타고 갔다 온 기분이었다
끝으로 비아가 화가 아저씨도 글을 잘 쓰실 것 같다고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잃어버린 기억창고를 꺼내신다
나에 관하여도
(우리동네 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시겠다고 했다
더구나 그 자리에서 듣던
TRIUMVIRAT의 <For You>라는 노래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었다
물론 선곡은 화가 아저씨가 했지만
뿐만이 아니다
그날 만난 마당님의 시어른이 사시는 곳은
우리 친정아버지 고향에서
세바퀴 굴러가면 자리잡은 곳이었다
그 동네에 관하여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내어놓으며
헉 하는 놀라운 인연이 나를 쳤다
한 술 더떠서 안단테님 시댁이 인천시 남구 @@동이라는데
그곳은 바로 우리 신랑이 살던 곳이 아니런가 ..
헉 이 글 속에 나는 모든 이들의 약도 안에 들어가 있는 작은 입자 같은 생각이 들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그는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그는 만나서 또한 괴로우니...)
뭐 이런 글귀가 저절로 맴돈다
이런 저런 의미에서
이방의 모든 님들과의 인연은 정말로 보통 인연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매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넘치는 감성으로 교환하는 ..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두렵기 까지 하다 ..아는 사람이 자꾸 나타날까봐 @@)
정말로 세상은 넓고도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