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두고 서울로 전학을 온 건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다.
그러나 방학때만 되면 초록치마가 둘러쳐진 강원도 고향이 그리워
난 동생 손을 잡고 방학내내 외갓집으로 내려가 자연과 함께 살았다.
뚝방에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들꽃을 꺽어들며 까드득 웃었고
동생은 곤충을 잡으며 "누나 이봐라 왕잠자리다."그러면서
한달이 넘는 시간이 그리 짧을 수가 없었다.
그 해 여름도 막내 동생과 외갓집에서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동생 나이는 한창 호기심이 많은 열 살이었다.
고향엔 산으로 둘러쳐진 가운데로 꽤나 너른 냇가가 흐르고 있었다.
투명한 물 사이로 물고기가 신명나고 평화롭게 노는 모습이 다 보였다.
여름이면 우리들은 멱을 감으며 다슬기도 잡고 손으로 물고기도 잡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은 그 물고기를 떼로 한꺼번에 힘 안들이고 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 동생을 장애인으로 만든 원인이 되고 말았다.
냇가에서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어른들은 쉽게 말해 꽝을 떠뜨렸다.
냇가에 한번 꽝을 떠뜨리면 넓지는 않지만 고향산천이 뒤흔들리고
고향마을이 어수선하고 냇가가 땅밑으로 꺼질 것 같고
냇물이 하늘로 다 솟을 것 같아서 나와 동생은 귀와 얼굴을 가리고 무서워 벌벌 떨었었다.
꽝이 터지고 나면 물고기들은 배를 허옇게 뒤집고
고기들은 악소리도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날은, 저녁을 하던 한여름 그 날은...
여느때처럼 할머니와 난 저녁 쌀을 씻었고
오이를 채썰고 있었고 아욱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소는 할아버지가 한 짐 가득 베어온 저녁꼴을 먹고 있었고,돼지는 쌀뜨물을 먹고 있었고,
똥개는 부엌바닥에서 퍼질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온 집이 터지는 폭탄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동생이 으아악하는 소리에 난 심장이 터진 것 같았다.
할머니와 난 동생이 소리 지르는 곳을 향해 폭탄처럼 튀어갔는데...
아.....정말 끔찍한 기억이다.동생은 피투성이가 되어 누나하고 내게로 달겨 들었다.
난 너무 놀라서는 동생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고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동생은 물고기를 떼죽음으로 죽게 만드는 꽝에 들어가는 심지를 가지고 놀다가
그 심지를 호기심으로 전기선에 꽂아 보다가 터져서 손가락 두 마디가 절단이 돼 버렸다.
끔찍하게도 오른쪽 엄지와 검지 한마디씩 잘려 나가고 말았다.
동생은 잘려나간 두 손가락을 보며 울고 또 울고 불쌍해서 못 볼 정도였다.
나는 동생을 위로한다고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도마뱀이 있잖아.자기를 잡으려고 하면 꼬리를 스스로 자르거든?
그럼 도마뱀 꼬리는 다시 자라서 예전처럼 되거든. 손가락도 마찬가지야.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자라날거야."
"누나 정말이야?"
"그으럼..."
난 대답의 꼬리를 내렸지만 동생은 그 말을 듣고 생기가 돌았다.
동생은 그 뒤부터 손가락을 보면서 대답하기 곤란한 말을 자주 물어보았다.
"손가락이 옛날처럼 똑같은게 생길까? 손톱도?"
"그래..."
"언제쯤? 십년쯤되면?"
"그때가 되면 이식수술이 발달돼서 다른 사람 손가락을 붙여도 감쪽 같을거야."
"그래?."동생은 큰 눈이 더 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조 손가락이 나와서 손에 끼면 진짜 손가락 같을거야.
이식수술은 아프지만 인조 손가락은 하나도 안 아프고...그렇겠다."
세월이 십년이 흘러도 동생 손가락은 자라지 않았고
또 십년이 흘러도 신장이식 수술은 성공했다고 하지만 손가락 이식은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과 똑같은 인조 손가락은 나오지 않았고...
그러나 동생은 한번도 누나가 자기 한테 그런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했다고
따지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지난번에 손가락 이야기를 하다가 누나가 손가락 자란다는 말을 그때는 믿었다고 하면서
서로 웃고 말았다.
동생은 지금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
자신이 장애인임을 인정하고 장애인증을 발급해서 차에 붙이고 다닌다.
무신일이 생겨 죽을 것 같다가도 세월이 흘러
그 세월이 약이 되면 그땐 왜 그랬을까 하고 웃게 된다.
선의의 거짓말은 약이되는 시간을 벌어주고 치유해 주는 역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