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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빈 공간이 있는 삶이 좋다.


BY 낸시 2004-04-18

손님에게 계산서를 내밀면서 보니 디자이너 아이리스가 계산을 잘못한 것이 눈이 띈다.

이십불이 적게 적혀 있다.

계산서를 보더니 갑자기 손님이 서둘러 수표를 쓴다.

태도로 미루어 계산서가 잘못된 것을 눈치채고 행여 내가 이십불을 더 달라고 할까봐 서두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순간 맘을 굳힌다.

그래 끝까지 모른척 하자...

그 손님이 돌아가고 나서 아이리스를 불러 말했다.

계산에 실수가 있었다고, 앞으로는 그 돈으로 우리 점심 사먹게 실수하지 말라고...

아이리스가 왜 알면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뜻하지 않은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니까 아이리스가 그런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손님에게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계산서에  쓰인대로만 지불해도 좋다고 말하란다.

그 방법이 더 좋을 것도 같다.

손님이 전혀 불안한 마음 없이 즐거워할테니까...

내가 나중에라도 돈을 더 달라고 할까봐 우리 가게에 발길을 끊을 염려도 없을테고....

그런데 나는 내가 한 방법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간혹 알면서도 바보짓을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나를 속이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속아주기로 맘을 먹기도 한다.

그리고  혼자서 히히거리고 웃는다.

바보같은 내가 재미있기도 하고 날 속였다고 생각할 그 사람이 재미있기도 하다.

그렇게 바보짓을 하는 순간들을 나는 내 삶의 빈 공간, 또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내 삶이  똑똑한 순간들로 빈틈없이 채워지는 것보다,  바보짓으로 부분부분 빈 공간이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알면서 바보짓을 하고 난 순간  문득 내 삶이 풍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