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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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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꾸고 난 후


BY 동해바다 2004-03-31



     출렁임 하나 없는 바다였다.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이 물장구치면서 수영하는 모습을 
     나는 아주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바다 깊숙한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그때 너무 조용하던 바다에 해일이 일면서 내 아이들을 삼키고 말았다. 
     너무 놀라 떨어지지 않는 발을 동동구르며 안절부절하다가 
     해안 절벽 위에 내가 있었던지 험한 바위를 타넘어 모여있는 사람들 
     틈 사이로 가 보았다.. 
     
     아이들은 없고 시누만이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울부짖고 있었다. 
     아니야...아니야....그럴순 없어... 
     이건 분명 꿈일거야...거짓이야....소리를 지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쇼파에서 잠들다 깨어난 나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일주일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내 아이들을 데려가는 줄 알았다. 
     정말 깨어나려고 발버둥쳤던 꿈 속...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꿈은 잠재되어 있는 의식의 표출이라지만 생생히 떠오르는 나의 울부짖음과
     강한 부정이 현실로 돌아올수 있었던 힘이 되었나 싶다.
     모든 의식이 잠을 자는 동안에 쉬고 있긴 하지만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가 나를
     일깨우려 했던 것일까... 

     자정을 넘어 새벽 한시다. 
     방문을 살짝 밀어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을 닫는다.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한국사람들의 평균수명이 80세란다. 
     그 평균수명을 채우시지 못하고 73세의 연세로 생명줄을 놓으신 시어머니.. 
     40대 초반에 자궁수술을 하시고 그 후로 30여년간 끊임없이 크고작은 흠을 
     나이답지 않게 주름없는 살갗 여기저기에 남겨 놓으셨다. 

     만성신부전증 14년을 앓으시며 장애 2급 판정에 복막투석 6년째... 
     한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체내의 모든 생명체들이 고군분투한 세월이 얼마던가.. 
     또한 먼저 가신 아버님과 가족들 또한 진이 빠지도록 병간호를 하면서 이어진 
     생명줄을 73세의 나이로 놓고 말았다. 

     눈물마져 나오질 않았다.
     영안실에서 흐느껴우는 아들아이 때문에 잠시 흘렸던 눈물 외에는
     단 한방울의 눈물도 눈물샘은 내보내질 않았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깨끗했던 시신과는 달리
     그야말로 발끝부터 머리까지 멀쩡한 곳이 없으신 채로 임종을 하셨다.
     
     삶에 애착이 무척 강하셨던 분..
     지푸라기라도 잡고 살아나려는 정신력으로 버티셨다 할까..
     친구분들의 "참 질기기도 하여라"라는 말씀들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가 싶다.
     "더 살아야 할텐데..."라는 말씀을 마지막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내게 하셨었는데 결국 그 말씀하시고 일주일만에 명을 거두었으니
     얼마나 애통해 하실까...

     말씀 못하시는 일주일간을 몸뚱아리에 연결해 놓은 관때문에 아픔도 그외의
     모든 고통도 하소연 하지 못하였으니....
     아마 지금쯤 저승에서 아버님을 만나 하소연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고통없이 죽고 싶어하는 마음 누구나 있을 것이다.
     원없이 살다가 자기가 죽고싶은 날....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치도 않을 소리긴 하지만....

     절에서 첫 재를 마치고 모든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간 이틀간...
     솔직한 마음은 날아갈듯 가벼워진 내 한 몸이였다.
     아직 떠도는 어머님의 영혼이 홀가분하면서 편안한 기분이 드는 내게 
     일침을 가하려는 듯 악몽을 꾸게 되었나보다..

     몸서리쳐지는 꿈을 털어버리며 다시 잠을 청해야 할텐데.....

     절에 다니셨던 어머님이였기에 영가를 49재까지 가까운 절에다 모시기로 하였다.
     이렇다할 특별한 종교가 없는 내게 절도 교회도 모두가 어색하긴 마찬가지..
     일주일에 한번씩 참석하여 재를 지내기로 하였지만...
     가까이 사는 우리는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어머님의 영가(돌아가신 영혼) 앞에
     그리고 부처님전에 어설픈 예불로 마음을 다 하기로 하였다.

     부디 좋은 생....좋은인연 만나시어 극락왕생 하시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