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등교길에 5학년짜리 큰 딸이 동생들에게 당부를 했다.
"끝나면, 유치원에서 놀고 있어. 누나가 데리러 갈께."
누나가 다니는 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간 지 두주 밖에 안 된 동생은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1학년짜리 동생과도 같은 내용을 약속하는 아이들의 손에,
나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씩을 쥐어 보냈다.
토요일, 주방에도 햇살이 내린다.
멀리 통나무 민박 앞에 노란 유채꽃 에도, 잔잔한 항구의 뱃머리에도 봄햇살이 나른하게
퍼져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놀러가고 싶은 날, 그런 날은 내가 바쁜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바빠 아이들은 잊고 있었다.
늦은 오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 환이가 혼자 왔길래, 누나들 기다리게 혼자 와 버리면 어떡하냐 했더니..."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누나가 걱정되었는지, '알았어, 그럼 다시갈께'하고는
돌아 나가는 걸, 빨래하던 할머니는 '방에 들어 갈께'하는 줄 알고, '응. 그래라' 한 모양이다.
한참 만에, 아이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가방을 멘 채 가버리고 없더란다.
나중에 돌아온 누나들이 다시 찾으러 가고...
어찌 되었든 아이 셋은 함께 돌아왔다.
일곱살짜리 아들 아이는 그 순수함으로 0당혹케 하는 일이 많은 녀석이라,
'능히 그럴만한 놈'이라고 아이 아빠는 웃었다.
누나와의 약속을 상기하고,아이는 깨끗하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걸어 왔다.
나도 아이처럼 후회 되는 일을 돌이키고 싶은 날이 무던히도 많았지만,
아이처럼 걸은 길을 또 걸어 다시 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저, 그러지말걸하고 가벼운 후회나, 가슴치는 뉘우침이 있을지언정 내 아들처럼,
깨끗하게 지워내 본 일도 없고, 오히려 잘못을 감추기 위해 교묘히 변명을 늘어 놓는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 삶에는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더 많고,
후회해 봐도 소용 없는 일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문제는, 잘못임을 인식하는 '아차'싶은 순간에, 바로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고
바로 잡을 용기가 일곱살 아들만큼이나 있을까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뒤늦게라도 지켜내려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아들은 늘 나의 스승이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 이 아이가 나를 키운다.
2~3킬로미터의 거리를 두번이나 왕복하기에 너무나 작고 연약한
두 다리를 모으고, 누나 들 사이에 아이가 잠들어 있다.
"엄마, 알지? 내일 등산 가는 날."
잠들기 전 아이가 내가 상기시켜준 약속,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알았어 다시 갈께.'하는 꼬마 스승의 말을 어찌 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