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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가는 길


BY 남풍 2004-03-18

어제보다 길가의 노란 색은 더 짙어졌다.

점묘파 화가의 그림처럼 유채꽃의 노란 점들이 비를 머금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길 아래 쪽 감자밭 너머 산방산 꼭대기에 비구름이 걸려 있고, 차 속도만큼 가까와 지는 바다가  사나와 지고 있다.

 

 마라도 유람선 대합실 자판기는 꽃향기, 바다냄새에  그 진한 커피향을 더한다.

폭풍 주의보가 내려진 송악산 앞, 나는 300원의 동전을 내고, 30분의 시간을 들여

최고의 아침을 맞는다.

 

아침, 여덟시 30분부터 아홉시 사이, 완전한 나의 시간이다.

30분 동안 나는 마음이 이끄는대로 차를 몬다.

어떤 날은 도서관 앞 도로변에서 책을 읽고, 어떤 날은 산방산 아래에 앉아 있기도 하고,

오늘 내 마음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이곳 송악산 아랫길로 나를 이끌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곳에서, 차 유리를 내리고

나는 스물 세시간 삼십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람은 바다의 기운과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을 모아 내 폐 가득 채워 놓고,

몸 안을 돌아 ,부패한 내 의식의 부스러기들을 쓸어 나간다.

 

 마음의 긴장과 화는 마음에 불럭을 만들고, 몸에 불럭을 만들어 피와 의식의 순환을 막는다.

몸과 마음에 만들어진 블럭은 마음에 병을 만들고, 몸에 병을 만든다.

지난 하루새 내 안에 쌓아 올려진 블럭이 싸한 바다 바람에 허물어진다.

바다처럼 출렁이고, 바람처럼 가벼워 지려 한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나, 원래의 나다.

화나고, 짜증내고, 다른이에게 상처 주고, 남을 비방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원래의 내가 아니다.

 

사람은 막힘 없이 흐르고, 주저함 없이 자라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늘 막힘 투성이고, 주저함 투성이고, 얽힘 투성이라

나는 날마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갈색의 커피 흔적이 남아 있는 종이컵이 바닥을 보인다.

내 의식의 밑바닥도 더불어 보인다.

내일 다시 차 출렁 거릴지라도, 이렇게 비워 내고 나면 세상이 훨씬 사랑스러워 보인다.

 

 이제 하루를 담아 내야할 시간이다.

나의 하루는 여기서 시작이다.

차의 엔진 소리 조차 부드러워 진 것 같다.

 

차 앞으로 '어린 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산방선이 들어선다.

저 산에도 코끼리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코끼리 안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

 

 어쩌면

그 코끼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다.

 

내 안에서 코끼리 심장 소리가 들린다.

 

또 신나는 하루가, 봄빛 가득한  길 처럼  시작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