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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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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방 님들께


BY 선물 2004-03-15

그동안 함께 모시고 사는 어머님께서 며칠 출타하셔서 제법 여유로운 마음으로 컴 앞에 앉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어제 오시기로 하셨다가 오늘 두세시간 뒤에 오신다는 말씀 듣고 한 번 더 잠시의 여유로 컴 앞에 앉았답니다.

 

얼그레이님께서 부끄럽게도 제게 호의적인 말씀을 해 주셨는데 참 감사하지만 그보다도 전 얼굴이 먼저 화끈거렸음을 말씀 드립니다.

 

 중1때의 일입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한 친구가 아이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교실 분위기가 너무 시끄럽다시며 제일 많이 떠드는 아이 이름을 적어내라는 어찌보면 참으로 비교육적인 행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나 자기 이름이 나올까봐 조바심 냈을 테고 나중에 결과가 나올 때 두렵기도 했겠지요. 그 당시 떠들지 않는 친구들이 드물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결과를 보니 평소 주는 것 없이 밉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 제 앞자리 친구가 1위로 불명예를 안게 되었지요.

전 선생님께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이건 잘못된 것이에요. 오늘 ***는 몸이 아파 하루종일 엎드려 있었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니 떠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걸 인정하시고 재투표하라 하셨습니다.

결과는 제 이름이 1위로 나왔습니다.

전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혼나게 된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절 다 좋아한다고 믿어왔는데 누가 왜 나를 그렇게 지목했는지 서운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저도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저도 평소에 조용한 친구는 못됩니다.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런 아이였기때문입니다.

그 때 울고 있는 제게 친한 친구들이 와서 위로를 해줍니다.

<누가 네 이름을 썼는지 모르지만 아마 아까 ***이름 쓴 아이들 중에 네가 나서는게 싫었던 친구들이 있었나봐.>

그 때는 저도 그 위로를 받고 마음이 조금 풀렸지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제가 나설 일이었나.

그 친구는 그 날 조용했지만 평소 많이 떠들었기에 다른 친구들도 나름대로 생각한 바 있어 결정한 것인데 내가 무슨 정의의 기사라고 나서서 다시 힘든 일을 친구들에게 하도록 만들었던가...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전 제 그릇만큼 밖엔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고 분명히 제게도 오류와 편견은 엄청 존재할 것이란 생각.

그런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나 그러하듯 자기 그릇만큼의 사고능력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두개인 귀로 열심히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

제 의견이 누구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의견을 한자락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욕하지 말라는 부탁드린 것이구요.

 

지금 제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것은 그렇게 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그 방법에 비겁함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입니다.

입장이 모호했다는 것이지요.실은 저 자신도 제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몰랐던 느낌이 듭니다. 탄핵이 싫었던 것이지, 혼란이 싫었던 것인지...

 

하지만, 이젠 조금씩 보입니다. 제 맘의 진실이...

그저께 sbs토론을 보며 한나라당 입장에 나온 패널들의 주장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는데 그 때 속상한 맘이 들었던 것. 유시민씨 주장이 귀에 더 솔깃했는데 그게 오히려 불안했던 점.

그리고 어제 kbs백인토론(?)에서는 상대적으로 그저께보다 차분하게 토론에 임하는 한나라당 패널들을 보며  마음이 개운했던 점.

그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도 결국은 한나라당 입장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한나라당을 싫어하면서도 노대통령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변명같지만 아직도 탄핵으로 인한 엄청난 혼란은 두려워 탄핵찬성 쪽으로 맘을 못 정했을 뿐..

새삼 다들 자제하려는 이 시점에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완전한 중도라고 해 놓고선 깊이 들여다 보면 노대통령 흠집내기에 주력하는 듯한 제 글이 좀은 비겁했다는 자성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만큼 미움에 대한 두려움이 저 스스로를 혼돈에 빠뜨릴만큼 컸다는 의미도 되겠구요.이 곳에 올라온 글과 답글들을 보면 모호한 글 밑에 붙은 꼬리글은 한결같이 읽는 이의 입장에 유리하게 글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쪽이 옳다는 것인가...혼란만 야기시키는..

저의 양비론은 그래서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그레이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선명하게 밝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또 반듯한 중심에서 인정해 주는 분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내뱉은 글에 대해선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고싶습니다. 당분간은 자숙하겠습니다.

곧 어머님이 오시니 집 안 이 곳 저 곳 정리하고 흠 잡히지 않도록 채비를 해야겠네요.

급한 마음에 쓴 글, 횡설수설 두서 없었을 것입니다. 죄송...

그래도 한 말씀만 더..

전 여전히 님들의 친구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