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셋.
여덟살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있고 세상에 자기와 결혼해줘서 고마워하는 술담배 전혀 하지 않는 착하고 가정적인 남편이 있다.
요즘 날 힘들게 하는건 친정이고 시댁이고 사고치는 동생들도 아니고 맏이라 뭔가를 자꾸 바라는 양가 부모님들도 아니다.
오로지 한가지 남편이 몸이 안좋은걸 알고 결혼은 했지만 병원에서 공기좋은 시골에 가서 요양할 정도로 몸이 안좋다니 그짐이 한 짐이다.
그럼에도 한달에 한두번밖에는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남편에게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요즘엔 서서히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아이 급식문제도 있고 주위에 도움 청할 사람도 전혀 없는 관계로 가까운 곳에서 시간타임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마음만 왜이리 바쁜지.
그동안 난 너무나 마음을 닫고 살았다.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이다.
학창시절엔 학교와 집밖에 몰랐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도 직장과 집밖에 모르고 살았다.
안해본게 못해본게 한번도 안먹어본 음식수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이제와서 억울하거나 하고 싶다거나 그런생각은 전혀없다.
다만 요즘 내 안에서 뭔가가 자꾸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스무살 시절 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참 열정으로 쓰고 지웠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후로 난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믿었던 사랑이 거짓임을 알았을때 난 펜을 놓았다.
그러나 요즘 난 한 음악만 들으면 가슴에서 뭔가가 뜨거운 그 무엇이 올라와 눈물이 된다.
바로 발리에서 생긴일의 드라마 주제곡이다.
8살난 아들도 내가 뉴스외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인지라 외면하고 살았다. 아마도
내가 사랑을 못받아봐서인지 억지로 밀어낸 것이다.
이런 내가 나이어린 조인성의 눈물연기에 감동을 받고 20살 시절로 돌아간것처럼 설레이고 이런 글까지 쓰게 될 줄이야.
누군가 나를 애절하고 처절하리만큼 사랑해 준다면...
요즘 난 마치 소녀가 된것 같다.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이렇게 가슴에 남을줄이야.
점점 내 마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이렇게 글이란걸 쓰고 있는걸 보니.
남편은 나에게 참으로 고마워 한다. 아무것도 가진것없고 배운것없고 건강하지 못한 자기한테 시집와서 아들낳고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고 빚없이 사는게 고마운 것이다.
가끔 사랑한다고 하지만 잠잘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조차도 내뱉지 않는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내가 하는 말은 딱 하나
"알아"
난 남편에게 딱 한가지만을 바란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내마음의 평화
지금까지 산 시간동안 마음편한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이니 내 마음만 편하게 해주면 그게 나에겐 사랑이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가 아닌 언제나 잔잔한 호수같은 마음을 갖고 싶다고 매일 기도한다.
하지만 가난한집 맏딸에 무능력한 부모.사고뭉치 동생.
혹 떼려다 결혼이란걸 했는데 시댁은 한술 더 뜬다.
그래서 더 마음을 닫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상처에 딱지도 앉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아량도 생겼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의 주인공대사(발리의 마지막 장면)에 가슴에서 뭔가가 올라오다니.
내가 다시 소녀적 마음을 찾은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사랑은 받아본적이 없기에 사랑을 외면하고 살았을까?
한번도 내게 사랑한다고 기다려주고 찾아와주고 내 앞에서 울었던 남자는 없었다.
딱 한번 잘못된 사랑을 그것도 혼자만 한게 지금까지도 상처가 되어 남았다.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사랑이란걸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발리에서의 조인성처럼 절제된 사랑을 꿈꾸느라 그주제곡을 들으면 눈물이 나는걸까?
조인성이 울며 매달리고 애절하게 절규할때 난 혼자있었음에도 브라운관을 똑바로 쳐다볼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것처럼 뜨거워지는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애까지 낳은 아줌마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드라마 주인공을 보고 혼자 고개를 떨구다니.
내마음에 아니 내가슴에 뭔가가 들어온 것일까. "꿈"
나의 꿈은 소박하다.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작가는 아니어도 좋으니 소일거리로 글을 쓰면서 남편과 노후를 보내는 것이다.
드라마속의 조인성을 보고 내가 꿈이라는걸 찾은 것인지 아니면 봄이 되니 봄바람이 부는 것인지. 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선 이미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이 어린 조인성을 보고 가슴이 설레이는게 아니라 죽을만큼 한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보고 난 울었던 것이다.
난 남편을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할수가 없다.
남편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건 귀한줄도 모르고 뭔가 찾을때에도 제외한다는걸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사람이 내 옆에 없을때 비로소 소중함을 알고 뒤늦게 사랑이었다는걸 안다.
세월이 지나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비우고 없을때 그때서야 할수 있을것이다.
사랑한다고. 사랑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