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에 너무도 감명깊게 본 영화 닥터지바고...
끝없는 설원,
그 하얀눈밭속에 홀로 덩그러니 서있던 하얀 집한채.
도망자 오마샤리프는 붉은 군대의 눈을 피해 사랑하는 여인 라라를 떠나보내며
라라를 태운 수레가 한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때까지 그 집 깨어진 유리창너머로 숨죽여 지켜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냄에 안타까워 못내 눈물을 글썽이던 오마샤리프의 커다란 눈망울.
그 연민에 가득찬 커다란 눈망울에 매료되어 어디선가 라라의 테마라도 흘러 나오면 가던길도 멈추고 설레여 듣곤했다.
내 청춘시절의 연인 오마샤리프.
그후 오랜 세월이 흘러 오마샤리프를 다시 본 순간,
연민을 가득 담았던 커다란 눈망울은 간데없고 앞이빨이 떡 벌어진채 희극적으로 늙어버린 오마샤리프가 내눈에 들어왔다.
일순간, 그동안 가슴 시리게 흠모했던 마음이 싸악 가시며 몹시도 당혹스러웠다.
언제나 닥터지바고속의 그 매력적인 모습일것 같았던 내 환상이 깨어짐에 몹시도 실망스러웠었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 내 아래 앞이빨이 떡허니 점점 벌어질줄이야.
반년전부터 남편이 내 앞 이빨이 점점 벌어지는것 같다며 자꾸 관심을 보일때조차 나이드니 그렇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는데
어느순간 벌어진 치아 사이로 거뭇거뭇 충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서둘러 칫과에 가니 그 거뭇 하던것은 충치가 아니라 치석이였고 치석제거를 제때에 안해서 치아가 자꾸 벌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치석제거를 제때에 안하면 이빨 사이도 벌어질뿐더러 나중에 잇몸이 상해서 풍치가 되고 종래엔 이가 몽창 빠질수도 있다하니
서둘러 이가 시리도록 드르륵 드르륵 갈아대고 쇠꼬챙이로 이빨사이를 마구마구 헤집어 파는 고문을 당한채 치석제거를 끝마쳤다.
내친김에 수십년전 충치치료 받으며 박아넣었던 아말감도 수명이 다 되었다해 몇개 금으로 다시 박고
이모저모 입안 대 청소를 하고나니 개운해서 좋긴한데 이미 벌어진 앞 이빨은 더이상 벌어지지만 안을뿐 원상복구는 안되었다.
진작에 칫과 정기검진을 받고 스켈링도 자주 했더라면 이 사이가 이렇게 벌어지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에 혼자 거울을 보며 아랫니가 다 드러나게 히죽이 웃어보니 하이구 맹구가 따로없었다.
그때 문득,
가지런한 치아의 싱싱한 내 20대만 기억하는 오랜벗들은 이빨사이 벌어진 지금의 나를 어디선가 보게 된다면
내가 오마샤리프를 보고 실망했던 그마음 처럼 그들도 지금의 내 모습에 혹여 실망하는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스러워졌다.
하하하 활짝 웃지않고 살포시 미소만 지으면 감쪽같으니 내 오랜 친구를 혹여 만나면 아무래도 윗니만 보이게 호호호 우아하게 웃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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