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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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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씨


BY candy 2004-02-28

주차장 지킴이, 귀동씨
아무도 그의 나이와 성을 모른다.
주인아저씨 내외가 '귀동아'라고 부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우리도 덩달아 귀동씨라 부른다.
아마 귀한 아들이라 그런 이름을 붙였나 보다.
안타깝게도 그는 정신연령이 낮다.
하지만 귀동씨만큼 친절하고 순진한 사람도 보기 더물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나 보다.

자신의 임무는 그 어느 누구보다 철저히 수행하는 귀동씨.
휴가 끝에 주차장을 찾으니 귀동씨가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한다.
"20, 오랫만이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는다.
"잘 지냈어요."
"주차비 내고 가야지."
"알았어요."
퇴근 길에 차를 타러 가니,
"20, 주차비 안 줘."
"아까 줬잖아요. 아침에,"
"언제?"
"아참, 빨간 지갑에서 돈 꺼내어 줬잖아."
"그랬나?"
깜빡 잊어 버린 것이 쑥스러운지 또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귀동씨는 하루라도 늦게 돈을 내거나 하면 여지없이 돈이 나올때까지 쫓아 다니면서 성가시게 군다. 하지만 그런 그가 밉지않다.
어느 누가 그만큼 자신의 임무에 저리 충실할 수 있을까?

그는 사람 이름은 커녕 차번호도 끝까지 못 왼다.
고맙게도  두 자리 숫자로 나는 불린다.
어떤 사람은 그냥 차번호 첫 자리 숫자로 불리기도 한다.
"6, 오늘 언제 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건만 그는 꼭 몇 시에 집에 가 하고 퇴근 시간을 묻는다.

그의 모양새는 연중 변함이 없다.
1년 내내 주차장 간이사무실에 기거해서인지, 아님 선천적으로 피부색깔이 까마잡잡해서 인지 몰라도 새까맣고 반들반들 윤이 난다.
복장은 사시시철 파란색 츄리닝 바지에 보라색 아줌마용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바지 끝은 빨간 양말 속에 얌전하게 말아 넣고서 말이다.
여름이 되면 흰 런닝셔츠에 반바지로 바뀌지만 별반 변화를 못 느끼는 차림새이다.

사람들은 가끔 귀동씨의 일화를 이야기 하며 웃기도 한다.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하루는 귀동씨 주인의 생일이었나 보다.
아마 많은 손님이 온 모양인지, 바빠서 혼났다고 보는 사람마다 은근히 자랑이다.
누가 짖꿎게 질문을 한다.
"귀동씨, 사장님 장남이야?"
"으응, 아니지."
"그럼 맏인가?"
"그래 맏이지."
"우하하하, 귀동씨 너무 웃긴다."
그러면 또 예의 그 귀여운 미소를 띄며 남의 툭툭 어깨를 친다.

가끔은 심심한지
"커피 빼 먹게 돈 좀 줘."하며 요구를 하기도 한다.
먹을거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귀동씨.
그래서 가끔 먹을거리가 생기면 남겨두었다가 귀동씨 갖다 준다.
그런 날은 그의 호각소리가 더 힘차고, 반대 차선에서 차가 오더라도 두 팔을 벌려 길을 막으면서 제 집 손님 먼저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우린 귀동씨의 주차 안내를 그리 달가와 하지 않는다. 가끔 그의 지시에 따랐다간  맞은 편 차선에서 차가 갑자기 튀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미처 바빠서 인사도 안 하고 가면 쪼르르 달려와서 차문을 벌컥 열어 제낀다.
"어느 쪽으로 가?"하면 묻는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가건만, 그는 아직 누가 어느 방향으로 운전해 가는 지 모른다.


비록 세상살이에 좀 어눌해도 귀동씨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수행하는 귀동씨.
사람들이 귀동씨만큼만 자신의 일을 변함없이 수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