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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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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랑 같이 죽어요...


BY 이쁜꽃향 2004-02-27

정신없이 바빠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허둥대는데 핸펀에서 발신음이 들린다.

삐비삐비.

대체 누구지? 바빠 죽겠는데 전화로 할 것이지 무슨 문자람...

궁시렁대며 확인해 보니 둘째 아들넘이다.

엄마! 스마일.

친구집에서 아주 조금만 놀다가 집에 갈께요.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구리고 나랑 같이 죽어요...

 

좀 전의 찌푸려졌던 인상이 삽시간에 어이없는 미소로 변했다.

아마도 전화로 하면 엄마로부터 분명 잔소릴 들을 게 뻔하니깐

녀석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문자로 보냈을 것이다. 

미리 말 안하고 놀러 간 것은 아닌 게 되는 것이고

바쁜 엄마는 일부러 전화하여 미주알고주알 잔소릴 늘어놓지 않을 것이란 속셈일테지.

그래...봐 주자...나도 피곤한데 그런 것까지 따질 겨를이 없잖아...

 

언제부터인가 둘째넘은 내 안색이 별로 밝아보이지 않거나

화가 나 있거나 하면 늘 나를 껴 안으며 애정 표시를 하곤 했다.

'엄마~스마일~

이쁜 엄마...한 번 웃어 봐...

옳~지!! 거 봐, 웃으니깐 이십대로 보이잖아~

너무 억지로 웃는 체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웃어 봐~'

'엄마~나 이뻐??응???'

별로 풀어지지 않은 듯한 기색이면 끝까지 팔을 풀지 않고 나를 옭죄고서는

유난히도 지독한 입냄새가 풀풀 나는 제 입을 내 코 가까이 대며 연거푸 재촉을 해댄다.

"나 이뻐? 안 이뻐??"

냄새에 못 이겨 나도 몰래 '그래~이뻐 이뻐 이뻐~'라고 소리치면

녀석은 그제서야 팔을 풀어주며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더 얹는다.

"엄마, 오래 살아~그리고 나랑 같이 죽어야 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깜짝 놀라서 소릴 질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녀석아!!

너랑 같이 죽으면...내 나이가 몇이고, 넌 몇 살이게??

엄마가 서른 두 살 끄트머리에 널 낳았는데, 네가 육십세면 엄만 구십 한 살이다 이넘아!!!"

"그래도 나랑 같이 죽어!!!알았지???

엄마가 내 말 안 들으면 내 팔로 엄마 감아버릴테니깐 그렇게 알아...

이젠 내가 엄마보다 키도 더 크고 팔 힘도 훨씬 더 세니깐 엄만 날 못 이겨.

울 생물선생님께서 그러셨는데 중3이 되면 엄마들이 매도 못 때린대... "

숫제 반 협박이다.

아들넘 등살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다투고 난 뒤에는 더욱 가관이다.

'엄마...아무리 영감이 미워도 절대 이혼은 하지 마...

난 지금 한창 예민한 사춘기야...불량 청소년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절대 이혼은 하지 마...알았지???'

'엄마!나 이쁘지?

아무리 화가 나도 그냥 나보고 참고 사는거야~알았지~??'

하는 짓은 초등학생 티를 아직 채 벗지 못한 녀석이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애어른인지라

그녀석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나는 늘 말을 함부로 하질 못한다.

'엄만 전공이 교육학이시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교양없는 말씀을...'로 시작하여

조목조목 토를 달아 따지는 데에는 그야말로 유구무언일 밖에...

 

그러는 녀석이 오늘 제 어미가 바쁠 줄 알고,

또 그런 후엔 신경이 예민해 있을 줄 알고 '같이 죽어~'를 써 먹었나 보다.

 

난 내 엄마 살아계실 적에 단 한 번도 같이 죽고 싶단 생각이나 말을 해 본적이 없다.

돌아가신 후에야 정말 따라 죽고 싶단 생각을 절실히 했을 뿐...

살아계실 적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말씀드려볼 걸...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그리고 이 다음에 나랑 같이 죽는거야~'

그랬었다면 ...

내 어머니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마음을 더 다스리시고

자신이 남아 있는 자식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신가를 절실히 느끼셨을것을...

그 느낌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행복해 하셨을 것을...

 

'엄마 혼자 외할머니 산소에 가시면 울다가 혹시나 집으로 안 돌아올까 봐...'

자기도 피곤하고 시간이 없지만 엄마 따라 외할머니 산소를 함께 갔었다고

현관문에 들어서고 나서야 고백하던 녀석의 눈물 그렁그렁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래.

내가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하고 의리 강한 아들녀석들과

고집 세고 아집 강한 마눌 비위 맟춰가며 바쁘게 사는 남편과 더불어

우리 가정을 예쁘게 꾸려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마누라의 못 다한 꿈을 살려주기 위해

박사과정 마무리 하라며 나 몰래 없는 돈 마련하여 등록금을 납부해 버린 얄미운 남편과

오래오래 살다가 같이 죽자던 아들넘을 생각하며

거울을 보고 안면 근육 운동을 해 본다.

그래...

스마일~이야, 스마~일!!

세상이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하였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내 가족들을 위해 웃자...

힘 차게 웃어 보자...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다시 한 번 팔을 걷어부치자...

 

아자~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