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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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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던 아이


BY 27kaksi 2004-02-21


봄을 가득 머금은 비가 내린다.

주말의 하늘을 온통 덮으며, 비가 거실창에 찰싹 달라붙어 눈 인사를

한다. 문을 열고 받아 들이기엔 아직은 으스스 한기가 드는데......

연인들은 낭만적이라는 이름을 달아 주말의 데이트를 즐기겠고,

부지런한 주부들은 화분을 밖에 내놓아 봄을 맞이 하는 전령사로 쓰겠지

그리고 멋쟁이들은 봄옷을 챙기며, 아니, 벌써 차려입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보이는 산에 나무 색은 아직도 삭정이빛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속에 숨어있는 고운 연두빛을 상상해본다.

집에 놀러온 친구와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내가 말했다.

" 얘, 우리집에서 양쪽으로 산이 보이는거 너 모르지?

"그래? "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참 신기 하게도 우리집은 거실쪽으로는 운집한 아파트의 건물과

건물 사이로 그사이 만큼 산이 보인다. 그리고 주방창으로는 멀리 또

산이 보인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아서 계절이 바뀔때

변하는 나무의 색은 분명하게 보인다는거다.

곳곳에 물론 전망이 좋은 집도 많지만 아파트군속에 있는 우리집에서

그사실을 발견하곤 난 얼마나 좋아했던지....

오는사람에게 마다 그말을 전하고 집에들어오는 가족에게도 그사실을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라도 한것처럼 전했다.

아이들은 " 그래요?" 라고 별것도 아니라는듯 시큰둥했고, 그말을 들은

친구는 '호호' 하고 웃었다. 작은것에 혼자서 좋아하는 내가 측은

하다는듯... 예전집은 아파트라도 오래되고 1층이라서, 정원이 좋았

었다. 큰 거실창으로 나무가 우거지고, 봄이면 아람드리 흰 묵련이

피었고 벗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눈이라도 오면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봄이 오면 꽃놀이를 우리집으로오라고친구들을 불러들이곤 했다.

모두들 감탄사를 발하며, 그런곳에 사는날 부러워 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집은 새집이고 높아서 삭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난, 어렸을때 살았던 우리집을 많이 그리워 한다.

내가 자란 소도시의 나의집은 뜰이 넓고 꽃을 많이 키웠다. 지금은 흔적

도 없어진 동네의 중앙에 있던 우리집은 아주 큰 살구 나무도 있었고

뒷켠에는 복숭아 나무도 있어서 봄이면 분홍꽃을 피웠는데, 그복숭아가

아주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화단을 빙 둘러 잎이 동그랗고 파란 사철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조그맣고 하얀 매화도 있었고, 연분홍빛을 띠는 매화도 있었다. 계절이

변하는대로 다알리아며 함박꽃, 수국도 있었고, 해바라기도 있었다.

봄이면 어머니는 일년초 꽃들을, 제일 앞줄에 조로롱 채송화를 심고뒤로

키맞추어 손톱에 물들이는 봉숭아꽃, 저녁에 피는 채리핑크꽃이 피는

분꽃. , 새끼줄을 연결해서 가지를 올리는 연두색 동그란 등이 달리는

등꽃도 심었고, 나팔꽃도 심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꽃들이 지나고나면

여러종류의 국화가 온마당에 피어서 가을을 알리곤 했다.

꽃과 함께 자란나의 유년은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들과 언니가 학교에 가고 나면 쪼그맣고

마른 어리광만 부리던 나는 종일을 마당에서 혼자 놀았는데,

누런털을 가져서 누렁이였던 강아지만열심히 이리저리 날 따라다녔다.

꽃을 따기도 하고 분꽃을 나팔처럼 입에 물고 불기도 하고, 봉숭아 잎을

으깨서 손톱에 대고는 손을 단풍잎처럼 피고 물이 들으라고 앉아있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그렇게 하면 물이 잘 안든다고 백반을 넣고 저녁에 엄마가 실로 잘

매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언니랑 내게 봉숭아잎과 잎파리를 넣고

백반을 넣어서 아주까리잎으로 손가락에 하양두꺼운실로 묶어 주었는데

아침에 잠에서 깨면 열손중에 두서너개는 자면서 빠져버려서 색이

주황색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학생이라고 새끼와 약지 손가락

에만 들였지만 잠을 곱게 자서인지 그빛이 빨갛게 들어있어서 약이

올라 울음을 터트리곤 했던 어린시절......

종일 마당이나 꽃밭앞에서 혼자 놀다보면, 저녁이면,

이마랑 볼이 빨갛게 익어서는 화닥이고, 그다음날은 얼굴이 가므스름해

졌다.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봄볕에 그을린 날 보고

"엄마! 막내는 뭐했는데 저렇게 얼굴이 탔어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후로 신문지를 꼬깔 모양으로 접어준 모자를 쓰고,

놀았는데, 지금 기억 하면 참 웃읍기도 하지만 난 신문지 꼬깔 모자를

피터팬처럼 쓰고 혼자서 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지금 도시 아이들 처럼 하얀 얼굴을 갖지는 못했던것 같다.

쉰둥이인데다 오빠언니와의 나이차이가 많고 동네에 또래 친구가 없다

보니,겨울에는 늘 방에서만 놀았다. 몸이 약하고 감기가 자주 걸리던 난,

겨울이 가길 많이 바랬다.

밖에서 집안일을 하는 엄마에게, 이맘때가 되면 늘 묻는말은,

"엄마! 나 밖에서 놀아도 돼?" 하면,

"안돼, 추워! 감기 걸려! 이젠 따뜻한 봄이 오면, 밖에서 놀아도 되지만

지금은 안에서 놀아라! 착하지 우리애기"

엄마젖을 늦도록 먹고, 만지고 자던 여섯살의 난, 실지 나이보다 훨씬

작고 훨씬 애기 같았다. -이말은 후에 들은 말이지만-

중고등학생이었던 세 오빠들에게 자주 물었다.

"몇밤자면 봄이 오는거야?" 그러면

" 이 감기 쟁이야! 너 감기 나으면 오지!" 나는 감기를 원망했고, 따뜻한

봄을 열망했다.

그래서인지 봄에 대해 민감하고 꽃에 대한 애착 또한 많다. 아마도

십년이 넘게 꽃꽂이를 했던것도 그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꽃꽂는

것도 인색하고 꽃을 기르는것에도 소홀하지만, 나의 노년에는 마당이

넓은 정원이 있는집에서 살고 싶다.

계절을 느끼고, 계절별로 피는 꽃도 기르며,.........

봄이면 봉당에 쪼르르 몰려오는 햇볕도 주워모으며.....


오늘 나는,

오래전의 따뜻한 봄을 간절히 기다리던 조그만 계집애로 돌아가 있다.

젊어지는 샘물을 먹고 아이가 되어버린 동화속의 할머니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