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태어나 산에서 자라 다시 산으로 돌아가고픈 여자랍니다."
이렇게 소개글을 자주 썼고 이렇게 내 꿈을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등산은 좋아하지 않는다.
산을 정복하기위해 앞뒤도 안보고 기쓰고 산에 오르는 모습은
세상것에 연장인 것 같아서다.
난 산에 가면 야생화도 봐야하고 동물도 봐야하고 나무도 보고 송충이도 봐야 하는데...
산을 오르다 멈춰서서 한참씩 관찰을 하는데...누가 나랑 등산을 갈까?
그래서 산악회나 전문적인 등산 모임은 안간다.
나와 취향이 같은 친구와 가볍게 자연을 즐기며 산행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옳기 때문이니까.
일요일 지하철 안엔 등산복 차람의 등산가들이 많다.
검정색 딱정벌레 같다.
지하철은 자벌레 같다.
우린 그 속에 속한 벌레들중에 두 마리.
친구는 벼메뚜기, 나는 도롱이 애벌래.
추울까봐 내복에다가 니트 두 개에다가 등산조끼에다가 뜨듯한 겨울 등산복을 입었다.
산 초입에 겉옷하나를 벗고 산 중턱쯤엔 조끼의 자크를 내리고 장갑을 벗었다.
눈을 밟기위해 아이젠을 준비했지만 눈은 커녕 눈녹은 산길이 질척였다.
바람은 겨울 냄새를 가시기위해 봄이라고 붙은 이름의 향수를 온 몸에 뿌렸나보다.
진달래 향을 넣었나?달작지근하군 흠 흠....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냄새가 이럴까? 상큼 개운하군. 으음~~~
흙을 뚫고,흙을 머리에 이고 일어선 풀냄새일거야.아...아...좋아라.
소나무 가지로 오르는 송충이도 보고싶어라.
바위틈에 함초롬이 피어난 구슬봉이 보라색 꽃도 생각나네.
온 산을 내 땅이라고 우기던 진달래의 욕심을 이젠 이해할거야.
다람쥐의 영역을 침범한 청설모도 정말 귀엽거든......
창설모를 보았다.
털이 달린 작은 귀가 귀엽단다,친구는...
목도리 같은 꼬리도 탐스럽다.
산봉우리만 머리속에 집어 넣은 사람들은
위로만 위로만 오르려하던 본능을 멈추고 청설모를 본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오르려고만 한다.
하나의 봉을 향해 아니면 두 개 세 개의 봉우리를 향해 오르려만 한다.
산꽃이 피어 있어도 모른다.
나뭇잎 색이 하루하루가 다르고 나무마다 다르다는 걸 알기나할까?
숨이 차다 못 해 어지러워도 멈추지 않고 오른다.
다리통이 터질 것 같아도 또 오른다.
정상을 향해...
저 아랫세상에 살면서도 어제까지만 해도 일에 쫒기고 시간에 쫒겨 정신없이
살았으면서도 휴식을 취하러 산을 찾아와서는 정상을 위해 쫒기듯이 산을 오른다.
산에 와서도 산을 즐기는 것보다는 정복이 목적이다.
나무밑에 서서 나무를 낭만가가 되어 올려다 보지 않는다.
계곡을 굽이굽이 건너면서도 물에다 손한번 돌한번 한가로이 던지지 않는다.
꽃 한송이 쓰다듬어 줄 마음이 닫혀있고 몸은 이미 앞을 향해 돌진이다.
내가 산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쉬엄쉬엄 새월아 내월아 올라가는 것은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어서다.
비봉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것도 비탈진 바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면서...
소나무 밑에서 흙이나 낙엽위에 앉아 한가로이 점심을 즐기고 싶었다.
비록 컵국수에 못생긴귤과 맹숭밍숭한 커피 한 잔이라도
나무 밑에 앉아 바닥엔 흙기운을 깔고 아늑하고 편하고 늘어지게 점심시간을 보내리라 했다.
그러나 같이 간 한 사람이 완전 등산가라서 내 소박하고 단란하고 간단한 바램이 깨지고 말았다.
오가는 사람이 다 보는 비탈지고 좁은 바위에 앉아 컵라면 후딱 먹고
커피 한 잔 홀짝 마시고 일어서서 또 한 봉우리를 향해 가자고 한다.
친구와 난 시간도 없고 더 같이가고 싶지 않아서 내려가기로 하고 계곡을 끼고 내려왔다.
계곡엔 얼음이 녹고 있었다.
맑은 물 밑으로 낙엽이 한잎 한잎 또렷하게 보였다.
산 등성이로 소나무 무리가 멋스럽고 우아스럽다.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눌러지고 찌그러진 빵을 꺼내 먹었다.
...설탕 잔뜩 넣고 프림 넉넉하게 넣은 커피한잔 먹고싶다....
행복하다.
조용하다.
아름답다.
산을 보며 들꽃을 보며 곤충을 보며 마음과 몸이 따라주는 친구와 이런 시간을 갖는것이.....
왜 사람들은 쫒기듯이 생을 시작하고 살고 마감하려는 것일까?
하긴 나도 몇년전엔 보편적인 보통사람들과 똑같았다.
아파트 평수를 한 평이라도 더 따먹고 싶었고
땅 한덩어리라도 더 확보하고 싶어 적금을 들었고
일등을 고수하기 위해 딸아이와 내가 머리 터지게 공부를 했었고
더 멋쟁이가 되고 싶어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줄지어 타고 다녔다.
지금의 난 많이 변해있다.
내가 누울 자리 정도의 시골집과 들꽃 심어 놀 작은 화단이면 족하다.
올 해 고삼인 딸에게 공부가 하기 싫다면 대학에 가지 말라고 했다.
백화점은 커녕 옷사입을 마음도 없다. 있는 옷 입어도 충분하다.
산을 오르며 내리며 자연을 바라보며 편하고 조용하고 게으르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