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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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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아침


BY 남풍 2004-02-07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는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이 내리고 있다.

개학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일찍 일어나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겨우 깨워 차에 오른다.

차 안의 냉기에 몸이 오들 거린다.

함박 눈 날리는 거리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의 작은 얼굴들이 얼어 빨개 져 있다.

안녕, 아이들의 찬 볼에 입맞춰 주고 출발하려니, 작은 애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 흔들고 있다.

손이 시릴텐데...

 

눈은 회색의 아침 거리에 흰 꽃잎처럼 날린다.

차 창에 흔들리며 춤추는 눈 송이때문에 도저히 그냥 일상으로 돌아 갈 수가 없다.

눈의 유혹에 끌려, 차 방향을 돌린다.

 

라디오에선, 50대의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여인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다.

할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길은 많다는 말을 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영어를 배워 말하기엔

확실히 부드럽진 않았을 성 싶다.

손주를 볼 나이에 기어이 고등학교 교과서를 쥐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 앞에 흰 눈의 난무로 흐릿해진 산방산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매표소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고개드니, 미륵불이 흰 눈 속에서 나를 굽어 보며,

이제 왔느냐고 미소 짓는다.

그러게요, 마음 한 번 돌리기 이리 힘이 드네요.

 

정월 보름 불공 중인가, 일찍부터 법당안에 중년의 보살들이 법당 안을 정리하고 있다.

합장하고, 녹색의 한줄기 향을 들에 촛불에 갖다 댄다.

향 끝에 옮겨 붙은 불은 한 줄기 연기로 변해 찬 법당 천장을 향해 오른다.

합장하는 내 앞에 놓인 불전함 위에 지폐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사람들의 기원이 저 돈에 실려 이 안에 내려 앉고,

예불 시간 마다, 스님은 목탁 두드리며, 뉘 집 아무개 잘 되게 해달라 축원 할 것이지만,

난 어째 불상을 마주하고서는 감히 그런 욕심조차 내기가 두렵다.

 

일배, 저 왔습니다.

이배, 제 옹졸한 마음 이 찬 마루 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삼배, 오늘 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신발의 지퍼를 올리며 보니, 거대한 범종 사이에 멀리 아침 햇살 받은 형제 섬이 보인다.

범종은 눈을 맞으며, 울리지도 않는데, 마음 속에선,

쿵~하며 종이 울린다.

 

내 삶이 멀리 보이는 저 바다에 뜬 형제섬처럼 눈에 들어 온다.

저 넓음을 내 작은 그릇에 어찌 담으리.

 

한 행자 승이 있었다.

늘 투덜 거리는 행자승을 보던, 노스님이 하루는 그를 불러, 물을 한 그릇 떠오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행자, 물 한그릇 들고 들어 오자, 물 그릇에 소금을 한 줌 넣어 마시게 했다.

"맛이 어떠냐?"

"아, 당연히 짜지요."

 

그리고는 시내로 가서 같은 양의 소금을 넣어 맛을 보라 했다.

"맛이 어떠냐?"

"......"

 

자기 그릇 작은 줄은 모르고, 세상 근심 다 안은 양  투덜거리는 나를 보고 하는 말 같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고 해를 향해 차를 돌려 세웠다.

눈 발 사이로 둥그런 빛덩이가 희미하게 떠있다.

 

맛이 어떠냐?

바로 이 맛이지요.

혼자 선문답을 한다.

 

'할려고 한다면 길은 많지요'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할려고 한다면,

본래의 소금 짠 맛이야 어찌하지 못해도,

커다란 그릇에 옮겨담으면,

소금맛도 사라지겠죠.

 

등 뒤에서 미륵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