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입춘이 지났다는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이 내리고 있다.
개학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일찍 일어나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겨우 깨워 차에 오른다.
차 안의 냉기에 몸이 오들 거린다.
함박 눈 날리는 거리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의 작은 얼굴들이 얼어 빨개 져 있다.
안녕, 아이들의 찬 볼에 입맞춰 주고 출발하려니, 작은 애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 흔들고 있다.
손이 시릴텐데...
눈은 회색의 아침 거리에 흰 꽃잎처럼 날린다.
차 창에 흔들리며 춤추는 눈 송이때문에 도저히 그냥 일상으로 돌아 갈 수가 없다.
눈의 유혹에 끌려, 차 방향을 돌린다.
라디오에선, 50대의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여인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다.
할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길은 많다는 말을 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영어를 배워 말하기엔
확실히 부드럽진 않았을 성 싶다.
손주를 볼 나이에 기어이 고등학교 교과서를 쥐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 앞에 흰 눈의 난무로 흐릿해진 산방산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매표소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고개드니, 미륵불이 흰 눈 속에서 나를 굽어 보며,
이제 왔느냐고 미소 짓는다.
그러게요, 마음 한 번 돌리기 이리 힘이 드네요.
정월 보름 불공 중인가, 일찍부터 법당안에 중년의 보살들이 법당 안을 정리하고 있다.
합장하고, 녹색의 한줄기 향을 들에 촛불에 갖다 댄다.
향 끝에 옮겨 붙은 불은 한 줄기 연기로 변해 찬 법당 천장을 향해 오른다.
합장하는 내 앞에 놓인 불전함 위에 지폐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사람들의 기원이 저 돈에 실려 이 안에 내려 앉고,
예불 시간 마다, 스님은 목탁 두드리며, 뉘 집 아무개 잘 되게 해달라 축원 할 것이지만,
난 어째 불상을 마주하고서는 감히 그런 욕심조차 내기가 두렵다.
일배, 저 왔습니다.
이배, 제 옹졸한 마음 이 찬 마루 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삼배, 오늘 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신발의 지퍼를 올리며 보니, 거대한 범종 사이에 멀리 아침 햇살 받은 형제 섬이 보인다.
범종은 눈을 맞으며, 울리지도 않는데, 마음 속에선,
쿵~하며 종이 울린다.
내 삶이 멀리 보이는 저 바다에 뜬 형제섬처럼 눈에 들어 온다.
저 넓음을 내 작은 그릇에 어찌 담으리.
한 행자 승이 있었다.
늘 투덜 거리는 행자승을 보던, 노스님이 하루는 그를 불러, 물을 한 그릇 떠오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행자, 물 한그릇 들고 들어 오자, 물 그릇에 소금을 한 줌 넣어 마시게 했다.
"맛이 어떠냐?"
"아, 당연히 짜지요."
그리고는 시내로 가서 같은 양의 소금을 넣어 맛을 보라 했다.
"맛이 어떠냐?"
"......"
자기 그릇 작은 줄은 모르고, 세상 근심 다 안은 양 투덜거리는 나를 보고 하는 말 같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고 해를 향해 차를 돌려 세웠다.
눈 발 사이로 둥그런 빛덩이가 희미하게 떠있다.
맛이 어떠냐?
바로 이 맛이지요.
혼자 선문답을 한다.
'할려고 한다면 길은 많지요'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할려고 한다면,
본래의 소금 짠 맛이야 어찌하지 못해도,
커다란 그릇에 옮겨담으면,
소금맛도 사라지겠죠.
등 뒤에서 미륵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