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겨울의 끝 자락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아직은 엄 첨 살살하여 윗도리 깃을 바싹 새운다. 어디 그뿐이랴...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나서는 여행길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길 떠나는 핑계는 대구에 여고 동기 모임있기에... 휴게소에서 잠시 시간을 멈추고 모르는 타인들의 틈에서 따끈한 한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봄은 정녕 어디 쯤 오고 있을까... 바삐 스치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아직은 무거워 보인다. 휴지처럼 바람 속에 묻혀 흔적없이 날아가는 세월이건만 남은 겨울은 마냥 지루하기만 하다. 여행 첫 날. 친구들과 수다 속에서 잠시 시름을 잊고 하루가 행복하였다. 산다는 것. 어느 가정이고 크게 별 다른 것은 없나 보다.(친구들의 수다에서 느낌) 둘째 날. 치과 예약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포항 딸 아이집에서 머물다. 백화점에서 아이 쇼핑만 하니 돌아서 나오는 뒤 통수가 조금은 간질간질... 언젠가 나 또한 양손에 쇼핑가방 무겁게 들고 나오는 그 날을 기다려 보자꾸나. 우리경제가 언제쯤 주름살이 활짝 풀리려는지 모르지만.. 셋째 날. 포항에서 다시 대구로 가다. 아들 가족과 딸아이 가족 모여서 겨울여행 떠난다기에 별로 동행하고 싶지 않았지만 길 따라 나섰다. 사양했다가 다음에 더 늙어서 데리고 가지 않을까 봐... 강구 시내 살 때 이웃에 미장원을 하는 새댁이 생각난다. 새댁은 자주 밤에 반참으로 통닭을 시켜 먹는데 처음에는 시어머니에게 배달 온 통닭을 같이 드시기를 권했지만 어른은 늘 먹기 싫다고 하시더란다. 사양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꾸중만 하시기에 그 다음부터는 시어머니께 드시란 소리를 다시는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짭짭하였다고 하더라. 나도 그 짬 날까 봐.....ㅎㅎㅎ... 넷째 날. 가창 골 냉천 눈 썰매 장엘 갔다. 이 곳은 나 어릴 적 봄 가을 중 한번은 소풍 오던 곳이 아니던가.. '아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문득 시조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은 산천도 변하고 모두가 변해 있더라. 아들 현이가 대표로 꼬마들을 데리고 눈 썰매장으로 가고 여자들은 목욕, 수영, 찜질 방에서 냉커피를 마시면서 여자들만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에 빠지다. 겨울의 짧은 하루해는 붙잡을 틈도 없이 훌훌... 어느덧 서산에서 노을은 붉게 자리 매김 하기에 우리 일행은 서둘어 여정을 마무리 하기 바쁘고.. 돌아오는 길목. 청정동해 바다 저쪽 수평선 위에서 찬란한 달님이 두둥실 떠오른다. 아! 오늘은 일 년 중 달이 가장 밝고 크다는 정월대보름. 얼른 내 집으로 가서 랑... 저 달 보고 강정물고 부스럼도 깨고 소원 성취 빌어야지. 헌데 무엇을 빌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고갯길 넘어서니 나의 안식처가 보이고 간판불빛이 오늘은 더 찬란하게 길 떠난 주인을 반긴다. 달리는 차 창가 밖을 보니 훠엉청 보름달이 우리 일행 따라 여행길 동행한다. 달님아. 내 집에 초대하니 내 따라 가자꾸나. 가서랑... 오곡 찰밥.. 감칠맛 나는 나물 국물에 팍팍 비벼서 너랑 나랑 정답게 나눠 먹자꾸나.. 어른들께서 보름날 김치는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