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의미.
결혼이라는 단어를 잘 들여다 본다.
찬찬히 들여다보는 한자어에는
정신을 이루고있는 혼이 만나
결합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두 혼의 결합인 것 이다.
두 사람이 만나 한 곳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만나 한 길을 함께한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공교롭게도 두번째의 결혼을 했다.
지난 1월 26일 그러니까....
음력으로 정월 초 나흣날.
신랑 그리고 신부.
신랑의 부모님.
그 두 분의 가장 가까운 벗 두분.
그리고 나의 신랑의 가장 가까운 두 벗을 모시고.
정확히 말하면...
모두 여덟사람이 한 자리에서 결혼식을 맞췄다.
보름간의 공고를 기다리고.
다시 정부청사의 사무실에서 영국카토릭의 수순을 따르지 않는
민간 결혼식이라는 것을 .....
서약식이 간단히 사무실에서 이뤄지고.
우리 둘은 그들 여섯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서약서에
싸인을 함으로써 결혼식이 합법적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움직여간 저녁 식사 테이블 가장자리엔 일단으로 된
작은 케잌이 아이보리빛을 발하며 풍선 세개와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서
먼저 준비해간 반지를 교환하는 작은 의식을 거행했다.
먼저 한국 전통 방식으로 작은 사발에 찬물을 부어 둘이 나눠 마셨다.
그리고 신랑의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천상에 계실 나의 아버지의 얼굴이 앞을 스쳤다.
그리고 일어서서 먼저 나의 신랑이 반지를 높이 쳐 받들고.
당신이 가장 힘들때 나는 그대의 방폐가 될것이오.
당신이 가장 아플때 나는 당시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것 이며.
당신이 위험에 처할때 나는 당신을 보호하겠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늘 당신의 곁에 있을 것이며.
이 부족한 영혼은 영원히 당신을 받들어 사랑하고 위로하겠오.
이 모든 사랑의 징표로 이 반지를 그대에게 드립니다.
라고 그의 선서를 따로 읽으며 반지를 내 손에 끼워 주었다.
나는 대지에게서 삶을 얻었고.
나는 빗줄기에게서 대화 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저 바위에게서 용서하는 법을
나는 날짐승들로 부터 사랑하는 법을.
구름과 바람에게서 도전하는 법을 배우고.
이렇게 이 자리에 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여기 이 약한 한 인간이 그대 사랑하는 나의 님에게
사랑의 징표로 이 반지를 드리노리....
이렇게 우리 둘은 반지를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샴페인 잔을 들어 각기 돌아가며 한 마디씩
축복의 언사를 주었다.
저녘 테이블에서 이뤄진 대화는 영국 국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와
어떻게 두 분의 노부부가 결혼 생활을 해 왔는지 였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가장 막내격인 부부가 된 순간이었다.
신랑의 친구인 마쿠스와 잰은 이미 육년전 부부가 되었고.
신랑의 부모님은 삼십칠년전 부부가 되었으며.
두 분의 친구분인 마가렛과 테드는 사십년전 부부가 되었다.
아주 많은 부부들의 얼굴들이 재각각의 모습으로 나의 뇌리를 스쳤다.
나의 과거의 남편의 얼굴과.
나의 벗들의 얼굴들이.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이드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
아직 들떠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슴을 추스리는 네살 연하의 남편이
된 신랑의 얼굴이 내 눈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날 밤.
우리는 흔하지 않은 눈을 고대하며.
한 기업가의 사교계의 오락관 홀이 지금은 호텔로 개조된 아주 큰 호텔에
방을 예약해 깜짝 쇼가 이뤄졌다.
임신과 결혼식을 동시에 해야하는 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그는 신혼여행을 미뤘고, 나 또한 몸이 감당해 낼 것 같지 않아서 그렇게 동의를
한 후 였는데....그는 한사코 작은 이벤트를 준비 했던 것 이었다.
기다리던 눈은 밤새 내리지 않았고.
아침에 편안한 밤을 보내고 기분이 몹시 가벼워 새털같은 느낌으로
환하게 웃자.
"눈이 서해안에 온다...우리 스카보로드로 가자...."
그 옛날 200년전 그 유명한 스카보로드 패어 가 너무나 흥청망청 유흥의 길로 접어들자
그 패스티벌을 법으로 금지했던 대영제국의 법문 앞에서 지금의 거의 그 유명새만
겨우 남은 그 바닷가 마을로 우리는 차를 몰았다.
그날밤.
그곳에서 맞은 오후.
눈발이 점점 거세지거니...급기야는 아침에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일 정도로
눈이 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녀온 깜짝 신혼여행.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도 눈이 쌓였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머니의 가피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이런 무언의 나만의 약속을 가슴깊이 세겼다.
우리는 절대로 지루한 부부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는 늘 배우는 부부가 되겠습니다.
그렇다 .
우리는 결혼을 하기전에 이미 같이 해온 삼년간을 통해서 수도없이
입버릇처럼 해왔던 말들이 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되.
서로의 규칙을 주장하기 보다는 서로를 존중하겠으며.
같은 목표를 향해 가더래도....
서로의 색을 잃지 않겠다는....
그렇게 우리는 아주 다른듯, 그렇지만 꽤 많은 이상과 관심사 그리고 가슴이 같음을
이미 서로 살아보아 알고있다.
이렇게 결혼식이라는 절차를 통해 부부가 되었다.
처음 우리는 이런 작은 절차마져도 회피했었는데....
약간 다른다.
그 이유로 이 글을 단상에 올리려는 것 이다.
결혼이라는 의미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결혼을 했다고 늘 생각 했었다.
그도 나도.
하지만, 막상 이 작은 의례가 끝나고 난 지금 이상하게도 약간 그것도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다른점이 있다.
어떤 책임감이랄지.
어떤 무의식의 세계에서 오는 정착감 같은것.
인간이 살아가는데 여러가지 제도와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은 늘 가슴으로 익히 느꼈었지만.
무정부 주의적인 나의 사고관에도 이런 느낌이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제도는 보이지 않지만, 그 제도의 힘은 공적이라는 힘을 동반하고 있어서.
사적인 아주 개인적인 힘에 비해 늘 공적인 힘이 더 많은 힘을 가지듯이 그런 힘을 나도 또한
느낀다.
그렇다.
결혼이라는 의미는.
두 혼의 결합이라는 일시적 수단을 통해.
두 혼의 정착이기도 하다.
떠돌던 두 영혼이 정착을 하기 시작하는 것 이다.
그 옛날 구석기 인들이 떠돌이 생활에서 신석기 인간의 정착생활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그리고 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경작을 하기 시작했다.
씨를 뿌리고 그 곡식을 거둬 들이기 위해서 기다렸듯이....
우리 두 영혼이 이제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고 논을 일궈.
그곳에 우리의 식량이 될 곡식을 뿌려 함께 밭을 일구는 작업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결혼의 의미인것 이다.
해마다 봄이면.
한국의 열병중 하나가 바로 결혼 풍속도.
예단.
양가의 충돌.
신랑 신부의 이기심.
그리고...더 많은것.
결혼식은 불가피하다. 공적인 어떤 힘이 분명히 있으니까...
우리는 모든 규칙을 일단을 어긴셈이다.
영국의 규칙도. 한국의 전통 절차도...
예단도 없었다.
나의 왜딩드레스는 중고가게에서 어느 연극배우가 입었음직한
샤롯 브론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꽃무의 상의에 베이지 스커트가 달린 드레스 였고.
신랑의 의상은 평상시 입는 가장 좋은 양복에 턱시도 타이와 벨트만 곁들였다.
나의 겉옷은 나의 한복의 현대식으로 약간 개조된 두루마기를 입음으로써.
서양과 동양의 냄새가 물씬 썪인 그런 의상이었으며.
나의 머리는 원래 긴 머리에, 일주일 전 사다 피운 노랑색 후리지아 꽃을 말려
결혼식 전날밤에 화관으로 만들어 놓은 그것을 살짝 관으로 썼다.
나는 워낙에 히피주의자적 기질이 있기도 하지만.
땅에서 나는 모든것을 만지는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에겐 아주 잘 어울렸다.
나 다웠다.
그도 그 다웠다.
결혼식.
두 사람의 영혼의 결합식이니 만큼.
한국의 모든 신랑 신부들이
각기 가장 좋은 뭔가를 찿기 보다는
차라리 가장 자기다운 드레스와
가장 자기 다운 예물을 고집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모님들의 관례는 이미 습관이다.
부모님들이 보아온 관례를 정통으로 따르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럴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우자르듯 뚝 잘라.
신랑신부의 의지를 굳건히 내어 비침으로써.
두 사람의 의지가 듬뿍 담긴 결혼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이글을 쓰는 저 또한 왜 부모님과 부딪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저는 강력히 우겼다.
두번째입니다. 저에게는....
저는 저를 이미 잘 압니다.
우리의 방식으로 치르겠습니다.
핸리 8세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핸리 8세가 제정해 놓은
그 별난 법을 피해서 민간 결혼식을 훌륭히 맞췄다.
예단 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교회 결혼식을 이루지 못한 두 분의 부모님의 마음이야 어디
편하시겠는가마는....
그 두분이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나와 앤디가 결혼을 한 것이니까....
나는 약간의 미안함도 없다.
미안함이 남으려하면, 최소한 다시 생각해 본다.
결혼식은 어땠는가?
아주 조촐했지만, 결혼식 다웠지.
라는 나의 답변이 시원한 것에 만족한다.
봄에 이워질 많은 결혼식들이
진정으로 두 혼의 결합에 더 많은 촛점을 맞춘 결혼식으로
많은 신랑 신부들이 재미난 애피소드를 괴로운 이야기보다 더
많이 가직하기를 빌면서 이글을 올립니다.
좀더 신랑은 신랑다운 의상과 예단.
신부는 신부에게 걸맞는 의상과 예단.
그래서 많은 새신랑 새신부님들이 각기 자기 다운 색깔로 결혼식을 치르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