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한다고 할 때
너 속내 내 속내를 다 보여주던 친구들이 이랬다.
"너 같이 고지식해서 장사를 해 먹겠냐? 말아 먹지나 말아라."
내가 어느 정도로 고지식하냐면...... 온라인상에서 글만 쓰다가 처음 정모 있던 날.
처음 본 외간 남자들이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는데,
나는 60년대 처녀처럼 손을 뒤로 빼고, 눈 내려 깔고 고개만 숙이는 인사를 했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술 한 잔 받아 원샷하라는 걸 내 고집에 맞춰 입술에만 얇게 묻히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몇시간을 있다가
김 다 날아간 아까운 술을 그대로 놓고 엉덩짝이 무감각해져 엉거주춤 일어서곤 했었다.
나이트 가자는 걸 "전 그런데 가 본적이 없어요."하고선
의자 자국 선명한 치마를 풀럭거리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얼음판에 미끄러진 아줌마처럼
뒤로 안돌아 보고 빠른 걸음을 걸어야 했던 고지식을 고수하던 나였다.
산이나 멀리 여행갈 때 빼고 치마만 입는 치마 두룬 아줌마이기도 한 나.
친정 어머닌 이러기도 하셨다.
"융통성이 없고 붙임성이 없어서 어쩌냐? 보증금 다 날리면 어쩐다니..."
어디를 찾아가다고 아무리 길을 몰라도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보지도 못한다는 걸
딸의 성격을 어머닌 잘 아시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웃 친구는 한명이 전부였고,
니멋대로 내멋대로인 남편이 집으로 안들어 오길 물먹듯했어도,
자식이 자고 있는 집을 두 번이나 낼름 날려 먹었어도
16년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버텼다.
친정에도 큰일이 없으면 가지 않았고, 친구도 안 만났고,
집을 벗어나 단 며칠 가출도 하지 않았다.
주변 친척들은 또 이런 걱정도 했다.
"그렇게 삐쩍 마르고 몸이 약해서 수퍼를 할 수 있겠니?수퍼는 수퍼우먼이 하는거야."
여고시절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체육선생님이 시체같다고 하셔서
여고 졸업할때까지 "시체"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던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키는 큰편인데 몸무게는 50키로를 넘은 적도 없고
지금은 비밀이지만 뼈에 가죽만 붙은 몸매를 가지고 있으니
약하고 게으르고 병뚜껑도 못열어서 발발발 떠는 정신은 이십대 초반이요.
주민등록상 나이는 마흔하고 넷이요.몸은 육십 먹은 할머니 같기 때문이다.
어리버리 버리어리 비실배실 배실비실하게 인생의 반을 산 내가
그 어렵다면 어렵고 힘들다면 힘든 장사를 하기로 결정을 해 놓고
밥맛이 텁텁하고 앞일이 막막했었다.
결혼해서 욕심버리기 포기하기 무관심하기 또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했던 내가
입담좋고 간을 빼놓아야 살아남는다는 장사하는 아줌마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장사를 시작했다.
며칠 고민 끝에 매장 이름을 몇개 지어 놓고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좋다나
그래서 간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광고도 못하고 바람이 숭숭 사타구니로 들어오던 일년전 처음문을 열던 겨울.
큰동생이 내 옆에 서서 계산하는 걸 도와주고
친환경유기농 매장에 경험이 있는
아줌마들이 뽀옹~~가게 잘 생긴 남자 직원을 앞에 세워 놓고
무대뽀로 손님을 맞았다.
인사는 잘했다."어서 오세요~~" 이렇게......
손님이 물어보신다"농약 안친거 정말 맞아요?"
"아...예...그렇습니다." 말끝이 흐려진다.
"어떻게 믿지요?보셨나요?"
심장 가장자리가 떨리며
"보지는 않았지만 믿고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몸이 튼튼해 집니다."
그러면 장사 경험이 있는 직원이 얼른 와서 설명을 했다.
"절대로 농약을 안칩니다.이걸 보세요.품질인증 마크.
수시로 농약 잔류성분을 검사해서 검출이 되지 않아야 나라에서 인정을 하지요."
그러면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집는다.
손 끝을 떨며 계산을 했다."안녕히 가십시요."
꼭 중국집 같다며 안녕히 가세요로 인사말을 고치라고 했다.동생이......
또 손님이 물어보신다.
"상추 오늘 들어온건가요?"
"아니요. 어제 들어온거예요." 진짜로 어제 들어왔으니까.
그럼 손님은 상추 언제 또 들어오나요 다시 묻는다 내일 들어온다고하면
내일와야겠다 그러고 나가시면 뒤통수에 대고 아직도 싱싱한데...... 그랬다.
"두부가 왜 없나요?"
"제가 잊어버리고 안시켰어요." 진짜로 잊어버리고 안시켰으니까.
"그렇게 정신없어서...젊은 사람이..."
그럼 딴대가서 사야겠다 하고 나가시면 네 그렇게 하세요 했다.
"이 과자 맛이 어때요?"
"안 먹어 봐서 잘 모르는대요." 정말 안먹어봐서 모르니까.
"먹어 보고 파셔야죠?"
"제가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요..."그리고 쑥스러워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이런일도 있었다.
간혹 물건중에 터무니없이 비싼게 있으면 "너무 비싸요.저같으면 못살거에요."
간혹 물건중에 싱싱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싱싱하지 않아요.내일 좋은게 들어오니 그때 사세요."
그럼 손님이 그런다"장사하는 사람 맞어요?" "무늬만 장사치네."
이렇듯 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고 붙임성 없이
장사라는 무늬만 가지고 장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