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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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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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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부는 초딩동창


BY 얼그레이 2004-01-27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러서 명절날오후쯤이 되어서야 시댁과 백미터가량 떨어진 엎어지면 코닿는 친정으로 비로소 올 수 있었다...너무도 가까이 친정이 내 눈앞에 있으면서도 내맘대로 오고갈수 없음에 현실의 처절함을 느낄때가 너무도 많다.....그래두 넘 멀어서 못 가는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 땅의 며느리들을 떠올리면서 내 애닳은 심정을 간혹 다독거린다...

 

남편과 난 같은 고향사람이다...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기전에도 두 집안의 바깥어른들끼리는 형님 동생 하면서 자주 어울려다니던 술친구사이였고...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같은 나이의 그다지 친하지 않은 계친구사이였다...우연히 마실을 나온 두 안사돈끼리의 입담이 오가면서 남편과의 인연의 물골을 트게 되었다...부부의 인연이라는게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걸 뒤늦게 깨닫자 무조건 선을 보기로 결정하고 남편을 처음 만났다...스물살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간헐적으로 솟구치는 내 궁금증 그러니깐  '내 인연은 과연 누구이고 어디에 살고있을까' 하는 생각이 선이라는 이상야릇한  관습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선뜻 받아들인것 같다....거의 선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이 좁디좁은 면단위의 마을을 고향으로 둔 두사람의 첫만남은 보통의 아주 낯설은 만남과는 느낌이 남달랐다...

당시에 배우자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했다...지금에 비하면 어찌 그리도 욕심이 없었는지..
그냥 먹고 살만한 직업을 가지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남성적인 냄새를 잃지 않는 남자면 그만이었다...세상엔 별다른 남자가 없을거라는 생각도 한몫 했었다...경제력 빵빵한 남자 하나 잘 만나서 내 팔자 편해볼려는 욕심 또한 눈곱만치도 없었던 그야말로 순수하디 순수한 때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남편은 남성성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탓인지 이도 저도 아닌 중성으로 또 때론 고등학교시절 단짝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여튼 당시의 남편의 첫인상은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겼었다...경상도남자들에게 독특하게 발견되는 나만 믿고 내방식대로 무조건 따라오라는 가부장적인 거만함을 찾아볼수가 없어서 특히나 맘에 들었다...적잖이 남을 배려하는 맘씨와 마음밭이 고울거라는 내 판단이 그를 배우자로 단박에 점 찍은듯하다...
유별난 성격으로 소문이 자자한 예비시어머니가 영 맘에 걸린 친정아버지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로부터 육개월쯤후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말을 건네는데있어 전혀 남을 전혀 배려할줄 모르는 그런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렇게 점잖고 속깊은 아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아할정도록 남편은 아직도 크게 나무랄데없이 나에게 한결같다...가끔은 이런 남편을 택한 나에게 가끔씩 속삭인다...알고보면 나두 그다지 운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무엇보다 남편과 부부인연을 맺어서 좋은건 어느부부보다도 나와 함께 공유할 어린시절의 추억거리가 많다는 점이다...각 고향마다 그 나름대로 추억이 있기마련이지만...남편의 어린시절이나 내 어린시절의 먹거리나 놀거리나 거의 모든것들이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말의 끝맺음을 대신 해버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남편이 겪은 어린시절의 일화가 내 일화의 일부이며 내 어릴적 생활 그 자체이다...지금처럼 생각이 많았던 때와 달리 아무런 걱정근심없이 신나게 뛰어놀았던 동네며 학교며 숲이며 산이며....남편이 거쳐갔었던 추억이 깃던 공간인 동시에 나 또한 거쳐간 공간들이 고향의 여기저기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는것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설레인다....

더군다나 남편의 고향친구들 태반이상은 내 어린시절 울집 바로 가까이에 살던 오빠이거나 그 또래에 같이 어울려 다녔던 울언니들의 또래친구들이기도 했다....중학교시절 울언니가 무진장 짝사랑했던 오빠도 끼여있고..아주 어릴적에 울언니와 손잡고 동네의 공동화장실에도 같이 갈 정도록 단짝이었던 고추친구도 있고...이름만 말해도 누구네집 몇째아들이며 어릴적에 한까불했던 아이였는지 한점잖했던 아이였는지...혹은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는지...여자애를 유독 밝히는 바람끼가 다분했던 애였는지...그 약력이 술술 다 나온다...
남편과 울언니들의 중고등학교시절에 이성을 접할수 있는 기회라고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아니면 고작 동사무소 바로 옆에 붙여있는 몇평남짓한 도서관이였는데...공부한다는 핑계거리로 도서관자리만 애궃게 잡아놓고 서로 기웃기웃거렸을거라고 보아진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울언니들은 유독 울남편의 얼굴만 기억이 날듯말듯 가물가물하다고 한다...남편 특유의 성격을 알고나면 그런건 조금도 이상한게 아닐수도 있다....
반면에 중학교를 고향에서 차로 한시간을 떨어진  도시에서 다녔던 나로선 얼굴을 아는 남편고향친구는 고작 두세명뿐이다...그 친구들조차도 아예 나에게 제수씨라는 말조차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호칭인지 그 옛날 코를 찔찔 흘리던 한 자그만한 꼬마를 부르듯 내이름을 부르는게 더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어버렸다.

함들어오던날도 울언니들은 남편고향친구들을 보자마자 멋적은 묘한 표정들을 지어보였다...결혼이라는 말조차도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때....허물없이 이곳저곳을 함께 뛰어다니며 놀던 이웃누나이며 이웃동생이었던 사람들이 이젠 다 커서 아들딸들을 낳고 기르는 어엿한 어른으로 장성했으니 멋적을만도 하겠지...
그후로도 난 일년에 두번있는 명절때마다 있는 남편의 향우회부부동반모임이 있고나면 은근히 궁금해하는 언니들에게 그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재미가 한때는 쏠쏠하기도했다....그럴때마다 언니들은 내곁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있고 오지마을에 간혹 찾아오는 우체부처럼 소식아닌 소식을 진지하게 얘기해주었다.....언니가 짝사랑했던 오빠의 주변얘기들을 할때는 언니가 가급적이면 아쉬움을 덜 느끼도록 하기위해 부풀리기보단 오히려 살을 더 빼서 얘기하곤했다...그 오빠와이프의 얼굴이 영 아니더라..그 오빠 이제보니 키도작고 생긴것도 별로더라 하면서....


언니들이 늦게 친정으로 오는 바람에 명절이튿날오후엔 아들내미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모처럼 둘만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오붓한 한때를 보냈다...
그동안 못잤던 잠이나 푹 자자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던 차에 고향한바퀴나 돌자는 남편의 제한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울부부의 첫만남의 장소까지 엉겁결에 답사하고 돌아왔다...
매서운 추위로 인해 한발자국도 옴짝달짝하기가 싫었던지 차창문밖으로 스쳐가는 남편이 혹은 내가 지각할세라 그 작은 보폭으로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다녔을 초등학교의 나즈막한 담장안으로 살짝 보이는 교정을 바라다보는데만 만족해야했다..
그리곤 다시 고향에 올일이 생겨 또 이런 여유가 주어질때 한때 무척 넓게만 느껴졌던 그 교정을 울아이와 함께 나란히 밟아보는 여운을 남겨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