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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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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의 생가.


BY 도영 2004-01-14

삼박사일동안 전라남북도를 돌고 왔다.

인천 사는 언니와 서울 사는 여동생과 여동생의 어린 조카들과

순천 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포항 사는 나는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추어

열심히 가속페달을 쎄리 밟고 순천역에 도착 하니 이십여분 시간이 남는다.

이십여분이란 시간이 어찌 그리 더디고 마음이 설레고 울렁 거리던지.

삼박 사일동안 순천-여수항-보성-완도-보길도-해남-목포 -변산반도-부안까지

숨가쁘게 돌고 집에오니 6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보성읍이

아른아른 거린다.

 

어릴적 어머니는 친정인 보성을 다녀오실적마다 파래며 꼬막을 가지고 오셨드랬다.

불행히도 나는 나 어릴적 외가를 가본적이 없어 늘 외가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물어물어 내 친정 어머니가 낳고 처녀시절 까지 살았다던 외가집을

찾아 보기로 했다

주소도 동네 이름도 아무것도 몰라 군대 시절에 외가집에 가본

친정 남동생에게 전화를 때렸다.

""얘...누나다..너 기억좀 더듬어바바..외갓집 ...보성역에서 멀지안타며?""

""어.누나...논산서 군생활할때 가보았지..지금 위치가 어디야?""

""응. 지금 보성역 앞인데..""

""아..누나...그럼 보성역을 등을 지고 앞을 보면 삼거리가 보여 그대로 30매타쯤 직진해..""

""어.삼십매다 직진했어..""

""누나 그 삼거리 지났으면 우회전해서 앞을바바..야산이라하기엔 낮고 제법 높은 언덕이 보일거야..맨위에 기와집이 있고 그아래 일자 집이 외갓집인데 아마 대나무가 담옆에 무성할텐데..보여?""

남동생의 목소리가 내 손폰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고 삼거리를 지나 올려다본 언덕위에.

진짜로 기와집이 있었고 그 아래 대나무가 무성한 스레트 일자집이 내 시야에 들어 온순간.

감이 탁 오는 거였다. 아! 외갓집이다..외가집이구나..

한번도 못가본 외가...

늘 가고 싶었지만 차비 많이 든다고 아들들만 쏙빼서 어머니는

가뭄의 콩나듯 보성에 다녀오셨는데..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전라도 보성 외갓집이 궁금했던지.

내나이 사십중반에 그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 이였다..

가파른 길을 한달음에 .. 마치 신비스런 기운에 이끌리듯 올라가니

대문은 닫혀 미동도 안한다.

세 자매는 굳게 닫힌 대문을을 지나 허물어진 담사이로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들없이 딸만 여섯이였던 외가는 외할머니가 서울 이모댁에 올라가신 십년 넘는 세월속에

손을 보지않아 거의 폐가가 되어 있었다.

내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심 일흔을 넘긴 연세인데..

어림잡아 세월수를 헤아려보니 80년은 족히 됐을 집이였다.

일자로  지은 외갓집은 부엌-안방-작은방 순으로 지어져 있엇는데.

창호지 바른 안방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툇마루보다 조금 큰 마루에는

먼지와 이끼가 겨울 햇살에 세월이 2004년임을 증명해주듯 두텁게 쌓여만 있었다.

안방에서 구멍숭숭 뜷린 창호지 틈으로 내다보니 처녀시절 어머니가

마당에서 풀먹인 외할아버지 모시옷을 너시는 착각에 혼동 스러워 눈을깜빡이니

언니가 우물가에서 누군가 걸어놓은 거울을 문대고 있었다.

삐그덕 거리는 부엌 나무문을 밀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안방과 연결되는 작은 쪽문틈으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기거했을

안방으로 몸을 낮추어 들어갔다.

오래된 안방에는 낡은 달력과 외할머니가 쓰셧을 집기들과 잡동사니들이

먼지속에 덩그러니  흩어져 있었는데..

여동생과 나는 혹 어머니의 체취와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 있을까.

미닫이 문을 열고 작은 방을 들어갔다.

작은 방에 오골오골 여섯자매가 살았을 흔적을 찾고자 여기저기 뒤져보니

구석진 곳에 한평쯤 되는 미니방에 밤색 자개서랍이 보였다.

 흥분되고 긴장된 마음으로 서랍 칸칸이 어머니의 소지품을 찾아보았지만.

낡고 누렇게 퇴색된 태극기 담은 원형 통만이 내손에 있을뿐

어머니의 소지품을 찾기엔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있었으니..

여동생과 나는 한참을 안방과 작은 방에 오도카니 서서 어머니를 회상했다

외할머니가 벌교로 장사 나가시면 밑에 다섯 자매들을 돌보았을 내 엄마.

내엄마가 오십년전 이자리에서 바느질을 하고 뜨개질을 하셧겠지.

내엄마가 이자리에서 한복을 만들어 동생들을 입히느라 밤을 샜겠지.

묘한 감정에 싸인 나는 부엌으로 다시 나갔다.

나무찬장에 나무 사과 궤짝에 ..오래된 젓갈통들 ..부뚜막 옆 에 그을린 꺼먼 자국들이

페인트 칠 이 벗겨진 사이사이로  남아있었고

무너지는 황토벽 속에는 대나무로 엮은 붉은 흙들이 조금조금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무찬장 안을 들여다보다 오래된 간장 종지를 발견 하였다.

문양으로보나 변색된 것으로 보나 아마 외할머니가 쓰셨을 간장종지같기에.

뚜껑까지 챙겨 소중히 가방에 넣으니..

언니가 말린다..두고 오라고..손대지말라고..

부엍을 나와 안방앞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찬찬히 마당을 둘러보았다.

왼쪽 마당 구석에는 윤기나는 동백나무가 푸른빛을 띠고

동백나무옆에는 우물가가.그리고 그옆에는 장독대가 나란히 있었다.

장독대 위에는 금이간 장독몆개가 겨울 햇살에 초라하게 서있었는데

저 우물가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은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였을테고

외할머니는 된장을 떠 보글보글 애호박을 넣고 된장을 끓이셨을 생각을 하니.

당시의 환영들이 필림돌아가듯 펼쳐지는  순간 이였다.

예전에 첫째 이모가 선보던날 ..

집으로 선보러 온 실랑인 이모부를 부끄러운 마음에 피해서.

뒤란으로 숨었뜨랫는데 이모를 찾으려고 반대편 뒤란으로 돌아가

이모를 놀래킨 개궂한 이모부와 이모를 떠올리며 대나무 서걱 거리는

뒤란을 들여다보니 흙담이 무너져 갈수가 없어 그저 대나무사이로 뒤란을 보아야만 했다.

이모들이 어릴적 낙서를 했다는 뒤란에 흙벽도 오랜 세월속에 무너지고.

마당에는 잡초들만이 무성하니 바람에 흔들거렸다.

햇살이 들어오는 툇마루에 먼지를 걷어내니 붉은 마루색깔이 선명하다.

마루 아래를 들여다보며 골똘히 뭔가를 찾는 내게 언니가 회상의늪을 깨버린다..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세 자매는

외갓집을 나와 다시 언덕위에 대나무가 무성한 외갓집을 올려다 보며

떨어어지지않는 발길을 돌려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로 다시 나왔다.

꼬막 정식을 주문하자 꼬막찜..꼬막 무침.꼬막 부침 ...온통 꼬막투성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친정에 다녀오심 가져와 삶아 주셨던

바로 그맛이였으니...

세딸들은 생전 처음본 무너져 가는 외가집을 안스러워하며

핑도는 눈물들을 감추려고 꼬막 까는데 열중을 했다.

""노인네...살아 계심  ...세딸들과 당신 친정도 와보시고 꼬막도 같이 먹고 얼마나 좋을까.복도 지지리도 없는 노인네야..우리엄마는 ..울엄마 바보..바보..""

내가 궁시렁 거리자 정서라곤 감정이라곤 메말라  각질처럼 허옇게 일어나는.

오십의 언니가 꽥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웟!!이제와서...그만!'"

언니의 갈라지는 목소리에 놀라 눈물인지 콧물인지 목구녕을 타고 훌쩍 넘겨야만 했다.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