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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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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BY 아리 2004-01-14

오랫 만에 에세이 방에 들러 이글 저글

 

정담있는 생각있는 글들을 읽으니 마음 한켠이 따스해진다

 

선물님의 달걀과 시어머님의 글이 정말로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구라도 그런 사연 하나쯤 아니 가지고 있으랴

 

나도 언젠가 슬픈 얼굴을 하고 딸기에 관한 글을 올렸으니 ~

 

내 삶이 이러했는데

 

들여다 보면 너의 삶의 작은 한켠에도 그렇게 묻어둔 가슴 시린 이야기들이

 

꼬옥 숨어 있다는 ...

 

어제 큰형님댁(시누이) 질부가 전화를 해서

 

또 내게 작은? 투정을 부린다

 

장남으로 시집을 와서 힘이 드는 하소연을 이것 저것 조심스레

 

털어 놓는다

 

누구보다 내가 질부를 잘 헤아리고 그 속을 훤히 들여다 보니

 

들어주고 알아주는 단 하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질부에겐 큰 힘이 라는데 ..

 

충분히  그 질부의 입장에 서주지 못하는 것은

 

나 또한 그녀에게 시댁의 외숙모여서 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질부의 가슴을 녹이고 아프지 않게 하고 싶은 기분만은 확실하다

 

생각하기 나름이라지 않은가

 

한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를 전해보았다

 

이해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 신랑 직장의 상사 부인의 예를 ..

 

그분은 늘 소탈하고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안하신 분이다 ..

 

일년만에 전화를 드려도 어제 저녁에 같이 통화를 한 사람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분이 왜 이리도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 '하는

 

갑갑한 느낌이 든적이 종종있다

 

직장 분위기상 아직도 한국의 관료주의 냄새가 폴폴 나는

 

그래서 아무리 이물없고 편히 사람을 대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상사의 사모님의 만나는 일은 무지 무지 어렵고 힘이 드는 일중의 하나이다

 

허물이 보이면

 

바로 신랑과 연계아닌 연계가 되기때문이다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씩 만남이 있다

 

이른바 보이는 서열과 보이지 않는 조심스러운 서열...

 

작년 어느 추운 날

 

바로 그 모임이 있었다

 

미리 예약되지 않은 식당을 찾으러 차를 타고 방황을 하고 ...

 

그 작고 조심스런 서열안에서

 

그 사모님이 안내한 곳은

 

아주 소탈하고 편안한 한식당이었다

 

그곳은 반찬이 셀프 서비스를 하는 곳이었는데 ..

 

결국 그 셀프 서비스를 하는 곳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서열의 힘이 작용할 때는 가서는 아니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가장 어리고 서열이 낮은 사람은 결국 밥을 잘 못먹고

 

반찬이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앉지도 못하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 ...

 

(나라면 윗사람을 모시고 식사를 하러갈 때보다

 

아랫사람과 함께해야할 때 더 많은 배려를 할텐데

 

설령 돈은 좀 비싸더라도 서비스가 좋은 곳을 선택할 텐데 하는 아쉬움 같은 ) 

 

마치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가

 

반찬수발 밥수발을 거의 끝내고 시어른이 드실 숭늉을 가지고 들어오면

 

이내 밥상을 치워야하는 상활을 맞아야했던 그 옛날

 

며느리는 결국 부뚜막에 앉아서야 편히 밥을 넘길수 있었다는

 

바로 그 옛날의 인상마저 없지 않았다 ...

 

불안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그 높으신? 사모님댁에 가서 차를 한잔 하기로 했다

 

준비되지 않은 부엌에 가서 아랫?사람들은 차를 끓이고 과일을 깍고

 

분주히 서둘다가

 

돌아서 오는데  왜 이리 쓸쓸하던지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모양 멍청이 엉거주춤 있다가

 

차를 마시고 나왔다

 

물론 나는 중간적인 위치여서 굳이 무엇을 하거나 서둘거나 해야할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고생을 하고 힘이 들어서가 아니다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 ..

 

아랫사람이 이럴 때 얼마나 불편해 할까 하는 생각을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작은

 

아쉬움 섞인 원망같은 거였다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 모임에서 가장 서열이 낮고 어린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과 고생을

 

경험한 듯한 이상한 기분으로 속이 화끈거렸다

 

나의 무슨 이야기든 열심히 들어주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주는 신랑은

 

결론이 오히려 깔끔하다

 

그분이 상사부인이어서 그렇게 행동하신 것은 아니란다

 

다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오신 삶의 한 풍속도라고 한다

 

늘 그렇게 윗사람을 대했고

 

나또한 의례히 그러려니하고 그런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해오던 일종의 관습이고 관례라고 ...

 

하기는 내가 학교 생활(직장)을 할 때에도 신참이 들어와서

 

우리세대의 무조건? 복종적인 태도가 배제되고

 

당당히 자기 주장을 하며

 

옳고 그름이 도리나 예의보다 우선시되는 신참들이 움직이면

 

나이드신 교무주임 선생님이

 

"허 참 군대식으로 했으면 ...좋겠어 .."

 

하고 헛기침을 하시던 기억이 난다

 

사람과 사람사이가 서열이 아닌

 

알고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데 ..

 

아니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상대방을 내 가슴처럼 따스하게 뎁혀주고 싶은

 

그 오롯한 마음이 일어나는데 세월에 묻히고 삭힌 그 어떤 시간들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 구중궁궐 깊은 마음 속에

 

나를 좋아해서 이물이 없어서 ...그래서 그랬을거라는 추측이

 

나올 수 있는 나의 근본적인 따스함이 있어야 되는지....

 

그래 그 오랜 시간속에서 거듭나서 진정 따스함이 우러나오면

 

눈물까지도 대신 삼키고 싶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

 

그런 만남을 내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