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겨울 들판엔 벌써 보리가 자라고 있고,
장식 달린 까만 에쿠스가 비상등을 깜빡대며, 2차선에서 얌전히 달리고 있다.
악셀레이터를 밟으며 슬쩍 그 젊음을 훔쳐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하며 앞질러 가는데, 서른 네해의 시간이 스르륵 스쳐간다.
중학교 때, 코 옆에 큰 점이 있어서 내 별명은 점순이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점순이다.
그다지 좋지도 않았지만, 그다지 거추장스러울 것도 없어서
굳이 그 점을 빼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올해 그 많은 관상보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말이다.
올들어 부쩍 꽤 전문가라는 사람들로부터 '점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결정적인 건, 며칠 전 아이들의 장래에 좋지않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무시하려해도 영 개운치 못한대다,
굳이 더 간직해야할 이유또한 없어서,
올해가 가기전, 점순이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 먹었다.
서른 다섯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하게 될것이다.
눈 덮힌 한라산이 그대로 통유리에 내려와 앉은 피부과에서
간호사는 마취할 때 따끔할 거라했다.
침상에 누워 눈을 감는다.
따끔~하더니, 살갗 타는 냄새가 난다.
이건 내 서른 네해, 기억이 타는 냄새다.
눈물이 나려한다.
소중한 무엇이 차가운 병원 쓰레기통에 약솜에 묻어 버려지는 것 같다.
그냥,
안녕... 나의 서른 네살까지의 생이여! 하고 인사한다.
내가 버리는 것은 내가 아니다.
서른 네해, 아프고 쓰린 것, 잘라버리고 싶은 것, 쓸모 없는 것, 그리고 슬픈 것....
그것만, 저 검은 한 점으로 축약해 '아름다운 피부과'의사의 손에
레이저 광선에 쏘여 죽이는 것이다.
거울엔 검은 점이 돌출되어 있던 자리가 붉게 파인 내가 있다.
여전히 내가 나인게 다행이다.
그러나, 이제 난 점순이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중학교 국어교사의
'삶의 환승역에서'라는 시가 있다.
어쩌면...
서른 다섯은....
삶의 환승역이다.
나는 낯설은 모습으로 역 앞으로 걸어간다.
남은 반은 어떻게 살게 될까하며....나머지 반을 달릴 새로운 기차로 갈아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