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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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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BY baada 2003-12-26

 

하루가 일년이었다면 네가 이해할까?

이렇게 다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말았구나. 글 한 줄의 여유도 마련하지 못하고 말이다.

모든게 미련한 엄마 탓이라고 한다면 넌 더 속상해하겠지.

밀려밀려 난 지금 이 자리에 있단다. 동성로 그 숱한 인파들 속을 너와 내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갔듯이 그렇게 한 해를 등 떠밀려 이 자리에 섰다.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비수를 뽑고 싶었던 엄마가

나 역시도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생이 구나 깨달으면서 지금 하염없이 속상하고 슬프다면

지혜로운 내 딸은 엄마의 어리석음을 속속들이 질타하겠지.

어쨌든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한 해를 접어야 할 시간이로구나.

그림동화 속의 아름다운(?) 공주처럼 백마 탄 멋진 기사가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생은 그렇게 동화처럼 여유롭지도 않고 동화처럼 아름답지(아름답다는 것이 그저 눈으로 드러난 것이라면)도 않은 것임을 엄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단다. 그렇기에 내 딸에게 엄마는 새 해에는 좀더 강해지라고 더 씩씩해지라고 지금도 너무나 잘하고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되풀이 하고 싶어진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네 연말연시네 하면서 들썩대고 외식과 가족끼리의 나들이에 한껏 흥겨워지는 때, 조금씩 살아 낸 한 해를 자축하며 위로하며 새로운 반성의 시간으로 넉넉해야 할 때 그러나 미련한 엄마 탓으로 너는 더 많이 외로웠을 테고 더 많이 고독했을 테고 그리고 더 많이 실핏줄 같은 여린 심정이 툭툭 터지는 아픔을 느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단다. 모든 걸 알면서도 오히려 더 네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구나. 엄마는 이렇게 힘들다는 시늉을 해대면서도 ‘너는 안돼!’ 라고 소리쳤으니 말이다.

내 이쁜 딸아! 통통하고 뽀얀 살결이 유난해서 어릴 적 어디서든 눈에 띄어 사람들께 이쁨을 받았던 너. 중학생이 되어서도 맑고 순한 너의 심성에 만나는 선생님마다 한마디씩 칭찬을 보태주었지. 그래서 늘 너를 생각하면 엄마는 누구보다도 당당해 질 수 있었단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나의 천사. 하느님께 너무 불공평하다고 퉁퉁거리다가도 너를 생각하면 엄마는 금세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너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엄마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가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영화를 너도 기억하고 있지. 오하라 스칼렛의 그 강인한 의지. 몇 번의 좌절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녀.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른다’는 스칼렛의 마지막 말. 너도 기억하고 있지. 우리 너무 많이 낙심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체념하지도 말고 꼭 오늘 우리가 견딜 만큼만 고민하자. 그리고 어김없이 분명 어딘가에서 떠오르고 있을 찬란한 태양을 기억하자꾸나. 햇살은 고민하지 않고 모든 곳을 골고루 비친다고 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크리스마스 선물대신 엄마의 편지를 받고 싶다며 가난한 엄마를 위로하던 너에게 엄마는 네 곁에 건강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오래 머물러서 네가 햇살처럼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걸 지켜보겠다는 말로 답을 하려고 한다.

2003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엄마가 네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