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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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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물


BY 남풍 2003-12-26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갈바람을 맞으며 죽음의 색깔같은 영구차가 집 앞을 지나고 있다.

나는 대문 앞에 지키고 섰다가 시어머니가 미리 준비해둔 흰 죽 서너 숟가락을

영구차가 지나는 길을 향해 뿌리고, 소주를 쏟아 붇는다.


저승 가는 이를 위한 이승의 밥과 살아생전에 밥보다 더 좋아했던 술을

찬 겨울 도로 위에 뿌려 놓는다.

이거 드시고 좋은 데로 가소서.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흰 쌀알, 훅 올라오는 소주냄새...


큰 키 휘청거리며 닻줄 풀어 놓고, 흔들대던 배 위에서 그물 잦던 이 곳을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구차에 싸늘히 누워 그는 바라보고 있을까.

그의 땀 냄새가 섞여 더 짭짤해진 바다, 바람... 느끼고 갔을까.


죽은 자는 뱃사람이었다.

해가 뜨고 짐에 상관없이 물때에 따라 살아 가던 사람,

어둠 깊은 바다를 향해 그물 던지던 사람,

유독 술을 좋아해 술 마시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낯설던 사람....

나와는 그저 시집의 일가의 한사람으로서 밖에는 관계를 맺어 본 적도 없고,

살아있을 적 그를 위해 밥 한 그릇 대접한 일도 없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찬 바람 속을 달려, 찬 땅에 뉘일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한 뱃사람의 죽음.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친 예수와 술에 찌들어 살다간 뱃사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와

누이에게 “너무 추워요. 보일러에 기름 좀 넣어 주세요..”

그리고 가득 채워진 기름통, 밤새 그리고 하루 낮을 원 없이 뜨거운 방바닥에 

잠든 채 죽어, 살갗이 다 익어 들어가 염을 하던 가족을 울린 뱃사람.....


우울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다.

내 나이 이제 서른 중반,

병이나 다른 사고가 없다면, 이제 반 정도 지나왔을까?

나머지 반을 어찌 채우며 살아야 할까.

내 죽음은 어떤 모습이여야 할까.


아름다운 죽음이 있으랴마는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면 ..

가는 뒷모습도 이름답지 않을까?


집 나간 아내와 주정뱅이 아비를 두고 나가버린 아이들...

술이 아니면 버티기 힘겨운 날..

토악질 해내도 올라오는 것은 술뿐,

삶은 이제 그에게 형벌이라 죽음은 어쩌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항구에 메어 놓은 만선기가 만장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다.